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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섯알오름 예비검속 희생자 추모비
#눈물처럼 떨어지는 동백꽃 이야기
마을 단위로 생활하던 섬은 2세기를 전후하여 탐라국이라는 지배 체제를 갖추었다. 고려 시대에 지방관이 파견되기도 하였지만 비교적 독립적인 소국 체제를 유지하다가, 1295년(고려 충렬왕 21년)에 '바다 건너 고을'이라 하여 이름이 '제주'로 바뀌었다. '바다 건너'라는 표현에는 그 중심이 개경이거나 한양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섬나라 제주도(島)가 해방 후인 1946년 8월 1일을 맞아 '제주도(道)'로 격상되면서 독립적인 행정구역이 되었다. 체리마스터모바일 하지만 이전 근대사회에서는 2개의 현을 지닌 제주목으로 줄곧 전라(남)도 관할이었다. 지리적으로 인접한 영향이기도 하겠지만 현재 제주특별자치도(이하 제주도) 주민의 3할은 호남 출신이라고 한다. 제주도 섯알오름 학살 사건을 추적하면서 '남도학교 기행'에 편입한 이유이다.
그곳에서 펼쳐진 이야기, 그 참혹하고 고통스러운 온라인골드몽 이야기, 눈물처럼 떨어지는 동백꽃 같은 이야기를 전할까 한다.
섯알오름 학살에 많은 이들이 연관된 현재의 대정중학교(사진 대정중학교 홈페이지)
#다크 투어리즘(Dark t 손오공릴게임예시 ourism)
여행은 일상을 벗어나 여유로운 휴식을 누리며 자유롭게 견문을 넓히는 활동을 말한다. '역사 교훈 여행'이라는, 덜떨어진 용어로 번안된 '다크 투어리즘'은 고통스럽고 비극적인 역사 현장 탐방을 말한다. 그러하니 주로 전쟁이나 학살, 착취의 현장을 찾게 마련인데, 1996년 생성된 이 용어는 현장 밀착과 실사를 통해 역사적 교훈 릴게임사이트 을 얻고 시대적 상흔에 대한 공감력을 키워가는, 다소 의도적인 행위라고 할 수 있겠다.
한국인의 정서로는 비극은 좀처럼 희극으로 치환되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죽은 자가 산 자를 위해 노래할 수 있다는 주문은 살아남은 자의 희망이거나, 문학적 수사이거나, 제례의 주술 정도일 것이다.
우리의 근현대사에서 이념의 차이로 인해 릴게임신천지 겪은 고통과 참혹함은 연좌의 세습보다 더 질기고 잔인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충분히 알고 있다. 학살 현장에서 느껴지는 몸서리 진동이 진앙처럼 깊고 뼈저린 것이어서 생애가 통째로 흔들리거나 파괴된 경우가 허다하다.
제주는 낭만과 환상의 섬일 뿐인가. 올레길에서 벗어나 잠시만 뒤안길로 접어들면 그곳에서 만나게 되는 풍경은 너무나 생경하고 때로는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가 그대로 드러나 있기도 하다.
혈육의 당해자들에게는 통곡의 세월이었으며, 한 발치 건너 지켜보는 이들에게는 비탄의 시간이었다. 이걸 아니라고 할 수 있는가. 마음 열고 귀 기울이며, 손 내밀고 대화하려는 소통 의지와 차이를 허용하는 인식의 확장 노력 같은 것이 필요하리라.
제주 4.3에 얽힌 가족사를 중심으로 공연활동을 하고 있는 우상임 감독(사진 본인 제공)
제주에 이러한 소통과 치유 활동을 공연예술로 실천하는 이가 있다. '자작나무 숲'이라는 음악 모임을 이끌면서 4.3을 경험한 자신의 가족 이야기를 소재로 제주 주민의 삶과 아픔을 무대에 올린 1인 음악극 창작자, 공연 예술가이자 아코디언 연주자로 활동하는 우상임이 그렇다.
2015년부터 시작된 그녀의 활동, '나의 우산(2015)', '붉은 풍금소리(2017)', '해녀 폭망기(2021)' 등의 작품은 전국을 넘어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국내는 물론 미국, 영국, 독일, 뉴질랜드 등으로 확장되어 현재까지 100회를 넘어서는 공연을 기록했다고 한다. 현실의 참혹함을 예술의 세계로 끌어올린 이런 활동, 한결 마음이 놓인다.
#섯알오름 학살
서귀포시 대정읍 송악산 북쪽에는 높이 20~30m 남짓한 오름 세 개가 동서로 뻗어 있다. 순서대로 동알오름, 셋알오름, 섯알오름이라고 한다. 크기가 작고 모양이 아담한 오름을 알오름이라고 하는데, 한자 표기로는 동란봉(東卵峰), 중란봉, 서란봉이다. 짐작했겠지만, 셋알은 사이알, 섯알은 서쪽알을 뜻한다. 제주도 전역의 기생 화산 즉, 오름의 수는 약 360개 정도이다.
이곳 섯알오름 학살은 제주 4.3 항쟁과 성격을 달리한다. 직접적인 관련성이 낮다는 뜻이다. 어떤 이들은 시기가 약간 다를 뿐 제주에서 벌어진 국가 폭력이라는 동일성, 정권 유지를 위해 정치적 반대 세력을 제거한 이념에 근거한 학살, 특히 그 대상 일부가 4.3 항쟁과 관련이 있다는 점에서 4.3의 연장선으로 파악하기도 한다. 다만 4.3 학살은 제주도에 한정되지만, 보도연맹 등 예비검속에 연루된 학살은 전국적 상황이었다.
일반적으로 4.3 항쟁의 시기는 1947년 3월 1일, 3.1운동 28주년 기념식이 진행되던 제주 관아 앞 관덕정 인근에서 일어난 총격으로 촉발되어 한국전쟁 이전인 1949년까지를 말한다. 군인과 경찰이 중심되어 서북청년단까지 포함된 토벌대에 의해 제주도민 무장대와 그 가족 그리고 그들이 거주하던 마을의 일반 양민까지 약 3만 명을 학살한 사건이다.
섯알오름 학살은 한국전쟁 발발 이후 1950년 8월 20일(일) 예비검속자 집단에 대한 표적으로 이루어졌다. '예비검속(preventive detention)'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죄형법정주의를 무시한, 탈법적 구금과 학살을 자행한 것이다. 한국전쟁을 전후하여 제주도에서만 약 1천 명의 주민이 적절한 조사도, 재판 절차도 없이 처형되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나쁜 용어가 '예비검속'"이라고 규정한 서귀포 어느 교장선생님의 말은 절규에 가까웠다. '보도연맹'과 함께 해방 공간에서 우리 역사와 이승만 정권이 지어낸 가장 반인륜적이며 악랄한 언어이다.
섯알오름 학살 현장에서 현재까지 밝혀진 피해자만 252명이다. 그중 학생이 40명 이상, 교사 34명을 포함해 피해자 상당수가 학교교육 종사자들이란 점이 더욱 가슴 아프다. 252명 중 41명은 아직도 유해 발굴과 신원 확인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살아남은 자의 증언
섯알오름 입구 희생자 추모비 앞으로 다가가면 양신하(梁信河, 1936~) 어른을 언제라도 만날 수 있다. 이제 90을 맞은 그는 아직도 4.3 평화·인권교육 명예교사, 4,3 유적지 해설사로서 그날의 실상을 증언하면서 살아남은 자의 몫을 다 하고 있다. 거동이 불편하지만 거의 매일 출근하여 그곳을 찾아오는 이들에게 자신의 기록과 기억을 전파하고 있다.
양신하씨 일기
그는 당시 대정중학교 1학년 학생이었다. 무릉동국민학교를 졸업한 후 1946년 11월 개교한 대정공립초급중학교(이하 대정중학교로 표기)에 3학년까지 다니다가, 1950년 8월 개명한 대정중학교에 자연스럽게 입학한 것이다. 4남 3여, 7남매 중 막내이며 큰형 기하(당시 42세) 씨와 사촌형 윤하(당시 34세) 씨도 희생자에 포함되었다.
그는 실존 인물 중 거의 유일하게 섯알오름 학살에 대한 생생한 기록을 가지고 있다. 대정고등학교 입학 1학년 때부터 기록하기 시작한 70년간의 일기인데, 특히 1955년~57년까지 기록 중 섯알오름 학살과 관련된 내용은 그 어느 기록보다도 사실적이어서 사료적 가치가 매우 높다. 일기와 별개로 '단기 4281(1948)년 2월 8일', 당시 12세 나이에 남긴 기록도 있다.
"8·15 광복 3회째 되는 해, 설 명절을 앞두고 신도, 무릉, 영락, 서3리 학생회(회장 황희겸) 주최, 연극 공연이 저녁 7시 영락리 향사(鄕舍, 지역의 공무를 처리하던 리(里) 사무소 같은 건물)에서 공연을 한다. (중략) 영락리 향사에는 초저녁부터 상·하 부락민들이 모여지며 만원이다. 어린이들은 공연장에 입실할 수 없다.
(중략) 나의 사촌 형님 양은하가 연단 책상 앞에 서며 연설을 한다. (중략) '우리들은 신탁통치를 반대하고 통일 조국을 위해 오는 5월 10일 선거를 반대해야 한다.' 양은하 형님은 많은 박수를 받았고, (중략) 은하 형님을 무릉지서 고일수 순경이 연행해 갔음으로 인해 회장단(회장 양희경, 부회장 김태길, 재무 양순하(양은하 동생)) 등 긴급 회합을 한 후 내일 공연은 취소하기로 했다."
양은하(梁銀河, 당시 대정중학교 학생으로 27세)가 대중 연설 실력이 빼어난 면도 있었지만, 백범 김구가 1946년 7월 15일 오전 제주북국민학교에서 시국 연설을 한 내용을 참고하고 인용한 것이었다고 한다. 제주북국민학교 연설회장에 양은하도 참여한 바 있다.
4.3 평화·인권교육 명예교사로 4,3 유적지 해설을 담당하고 있는 양신하 씨
위 양신하 어른의 기록대로 그의 사촌형 대정면 영락리 출신 양은하는 1948년 2월 8일 모슬포지서에 연행되어 고문을 받다가 1달이 지난 3월 14일 사망하고 말았다. 담당 경찰은 고웅춘 순경과 변태문 형사였다. 모슬포 민심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더구나 일본 유학을 마치고 1946년 12월부터 대정중학교에서 사회(상업)를 가르치던 교사 이승진(李承晉, 1923~1950)이 '김달삼'이란 가명으로 무장대 총사령관이 되어 활동하고 있었다. 이런 연유로 대정중학교 교사와 학생뿐 아니라 지역민들 또한 토벌대의 주요 감시 대상이 되었다. 표적의 대상은 대정중학교를 넘어 인근 한림(수산)중학교, 신창중학교, 안덕고등공민학교 학생들에게까지 미쳤다. 많은 수의 재학생과 졸업생이 예비검속자로 분류되어 희생된 것으로 알려졌다.
모슬포항은 1918년경 일제에 의해 개발되어 정기 항로와 어업의 거점이 되었다. 이후 행정관서와 교육기관은 들어서면서 대정면의 중심으로 자리 잡았다. 대정중학교는 1946년 개교하였으나 교명이 바뀐 1950년 8월 이후에는 제주도 서남부권을 대표하는 학교가 되었다.
한국전쟁 이후 제주도 전체에 약 10만 명의 피난민이 유입되면서 이곳도 학생 수가 크게 늘어 학년별로 5학급, 310명 정도 규모였다고 한다. 여기에 군인과 경찰까지 주둔하게 된 것이었다.
예비검속의 거점이었던 초창기 대정중학교 모습 그리고 섯알오름 학살과 관련하여 보다 구체적인 사실과 이후 처리 과정은 하편에서 이어가겠다.
선명완 담쟁인대안교육연구소장
선명완 소장
#눈물처럼 떨어지는 동백꽃 이야기
마을 단위로 생활하던 섬은 2세기를 전후하여 탐라국이라는 지배 체제를 갖추었다. 고려 시대에 지방관이 파견되기도 하였지만 비교적 독립적인 소국 체제를 유지하다가, 1295년(고려 충렬왕 21년)에 '바다 건너 고을'이라 하여 이름이 '제주'로 바뀌었다. '바다 건너'라는 표현에는 그 중심이 개경이거나 한양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섬나라 제주도(島)가 해방 후인 1946년 8월 1일을 맞아 '제주도(道)'로 격상되면서 독립적인 행정구역이 되었다. 체리마스터모바일 하지만 이전 근대사회에서는 2개의 현을 지닌 제주목으로 줄곧 전라(남)도 관할이었다. 지리적으로 인접한 영향이기도 하겠지만 현재 제주특별자치도(이하 제주도) 주민의 3할은 호남 출신이라고 한다. 제주도 섯알오름 학살 사건을 추적하면서 '남도학교 기행'에 편입한 이유이다.
그곳에서 펼쳐진 이야기, 그 참혹하고 고통스러운 온라인골드몽 이야기, 눈물처럼 떨어지는 동백꽃 같은 이야기를 전할까 한다.
섯알오름 학살에 많은 이들이 연관된 현재의 대정중학교(사진 대정중학교 홈페이지)
#다크 투어리즘(Dark t 손오공릴게임예시 ourism)
여행은 일상을 벗어나 여유로운 휴식을 누리며 자유롭게 견문을 넓히는 활동을 말한다. '역사 교훈 여행'이라는, 덜떨어진 용어로 번안된 '다크 투어리즘'은 고통스럽고 비극적인 역사 현장 탐방을 말한다. 그러하니 주로 전쟁이나 학살, 착취의 현장을 찾게 마련인데, 1996년 생성된 이 용어는 현장 밀착과 실사를 통해 역사적 교훈 릴게임사이트 을 얻고 시대적 상흔에 대한 공감력을 키워가는, 다소 의도적인 행위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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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근현대사에서 이념의 차이로 인해 릴게임신천지 겪은 고통과 참혹함은 연좌의 세습보다 더 질기고 잔인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충분히 알고 있다. 학살 현장에서 느껴지는 몸서리 진동이 진앙처럼 깊고 뼈저린 것이어서 생애가 통째로 흔들리거나 파괴된 경우가 허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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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육의 당해자들에게는 통곡의 세월이었으며, 한 발치 건너 지켜보는 이들에게는 비탄의 시간이었다. 이걸 아니라고 할 수 있는가. 마음 열고 귀 기울이며, 손 내밀고 대화하려는 소통 의지와 차이를 허용하는 인식의 확장 노력 같은 것이 필요하리라.
제주 4.3에 얽힌 가족사를 중심으로 공연활동을 하고 있는 우상임 감독(사진 본인 제공)
제주에 이러한 소통과 치유 활동을 공연예술로 실천하는 이가 있다. '자작나무 숲'이라는 음악 모임을 이끌면서 4.3을 경험한 자신의 가족 이야기를 소재로 제주 주민의 삶과 아픔을 무대에 올린 1인 음악극 창작자, 공연 예술가이자 아코디언 연주자로 활동하는 우상임이 그렇다.
2015년부터 시작된 그녀의 활동, '나의 우산(2015)', '붉은 풍금소리(2017)', '해녀 폭망기(2021)' 등의 작품은 전국을 넘어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국내는 물론 미국, 영국, 독일, 뉴질랜드 등으로 확장되어 현재까지 100회를 넘어서는 공연을 기록했다고 한다. 현실의 참혹함을 예술의 세계로 끌어올린 이런 활동, 한결 마음이 놓인다.
#섯알오름 학살
서귀포시 대정읍 송악산 북쪽에는 높이 20~30m 남짓한 오름 세 개가 동서로 뻗어 있다. 순서대로 동알오름, 셋알오름, 섯알오름이라고 한다. 크기가 작고 모양이 아담한 오름을 알오름이라고 하는데, 한자 표기로는 동란봉(東卵峰), 중란봉, 서란봉이다. 짐작했겠지만, 셋알은 사이알, 섯알은 서쪽알을 뜻한다. 제주도 전역의 기생 화산 즉, 오름의 수는 약 360개 정도이다.
이곳 섯알오름 학살은 제주 4.3 항쟁과 성격을 달리한다. 직접적인 관련성이 낮다는 뜻이다. 어떤 이들은 시기가 약간 다를 뿐 제주에서 벌어진 국가 폭력이라는 동일성, 정권 유지를 위해 정치적 반대 세력을 제거한 이념에 근거한 학살, 특히 그 대상 일부가 4.3 항쟁과 관련이 있다는 점에서 4.3의 연장선으로 파악하기도 한다. 다만 4.3 학살은 제주도에 한정되지만, 보도연맹 등 예비검속에 연루된 학살은 전국적 상황이었다.
일반적으로 4.3 항쟁의 시기는 1947년 3월 1일, 3.1운동 28주년 기념식이 진행되던 제주 관아 앞 관덕정 인근에서 일어난 총격으로 촉발되어 한국전쟁 이전인 1949년까지를 말한다. 군인과 경찰이 중심되어 서북청년단까지 포함된 토벌대에 의해 제주도민 무장대와 그 가족 그리고 그들이 거주하던 마을의 일반 양민까지 약 3만 명을 학살한 사건이다.
섯알오름 학살은 한국전쟁 발발 이후 1950년 8월 20일(일) 예비검속자 집단에 대한 표적으로 이루어졌다. '예비검속(preventive detention)'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죄형법정주의를 무시한, 탈법적 구금과 학살을 자행한 것이다. 한국전쟁을 전후하여 제주도에서만 약 1천 명의 주민이 적절한 조사도, 재판 절차도 없이 처형되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나쁜 용어가 '예비검속'"이라고 규정한 서귀포 어느 교장선생님의 말은 절규에 가까웠다. '보도연맹'과 함께 해방 공간에서 우리 역사와 이승만 정권이 지어낸 가장 반인륜적이며 악랄한 언어이다.
섯알오름 학살 현장에서 현재까지 밝혀진 피해자만 252명이다. 그중 학생이 40명 이상, 교사 34명을 포함해 피해자 상당수가 학교교육 종사자들이란 점이 더욱 가슴 아프다. 252명 중 41명은 아직도 유해 발굴과 신원 확인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살아남은 자의 증언
섯알오름 입구 희생자 추모비 앞으로 다가가면 양신하(梁信河, 1936~) 어른을 언제라도 만날 수 있다. 이제 90을 맞은 그는 아직도 4.3 평화·인권교육 명예교사, 4,3 유적지 해설사로서 그날의 실상을 증언하면서 살아남은 자의 몫을 다 하고 있다. 거동이 불편하지만 거의 매일 출근하여 그곳을 찾아오는 이들에게 자신의 기록과 기억을 전파하고 있다.
양신하씨 일기
그는 당시 대정중학교 1학년 학생이었다. 무릉동국민학교를 졸업한 후 1946년 11월 개교한 대정공립초급중학교(이하 대정중학교로 표기)에 3학년까지 다니다가, 1950년 8월 개명한 대정중학교에 자연스럽게 입학한 것이다. 4남 3여, 7남매 중 막내이며 큰형 기하(당시 42세) 씨와 사촌형 윤하(당시 34세) 씨도 희생자에 포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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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5 광복 3회째 되는 해, 설 명절을 앞두고 신도, 무릉, 영락, 서3리 학생회(회장 황희겸) 주최, 연극 공연이 저녁 7시 영락리 향사(鄕舍, 지역의 공무를 처리하던 리(里) 사무소 같은 건물)에서 공연을 한다. (중략) 영락리 향사에는 초저녁부터 상·하 부락민들이 모여지며 만원이다. 어린이들은 공연장에 입실할 수 없다.
(중략) 나의 사촌 형님 양은하가 연단 책상 앞에 서며 연설을 한다. (중략) '우리들은 신탁통치를 반대하고 통일 조국을 위해 오는 5월 10일 선거를 반대해야 한다.' 양은하 형님은 많은 박수를 받았고, (중략) 은하 형님을 무릉지서 고일수 순경이 연행해 갔음으로 인해 회장단(회장 양희경, 부회장 김태길, 재무 양순하(양은하 동생)) 등 긴급 회합을 한 후 내일 공연은 취소하기로 했다."
양은하(梁銀河, 당시 대정중학교 학생으로 27세)가 대중 연설 실력이 빼어난 면도 있었지만, 백범 김구가 1946년 7월 15일 오전 제주북국민학교에서 시국 연설을 한 내용을 참고하고 인용한 것이었다고 한다. 제주북국민학교 연설회장에 양은하도 참여한 바 있다.
4.3 평화·인권교육 명예교사로 4,3 유적지 해설을 담당하고 있는 양신하 씨
위 양신하 어른의 기록대로 그의 사촌형 대정면 영락리 출신 양은하는 1948년 2월 8일 모슬포지서에 연행되어 고문을 받다가 1달이 지난 3월 14일 사망하고 말았다. 담당 경찰은 고웅춘 순경과 변태문 형사였다. 모슬포 민심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더구나 일본 유학을 마치고 1946년 12월부터 대정중학교에서 사회(상업)를 가르치던 교사 이승진(李承晉, 1923~1950)이 '김달삼'이란 가명으로 무장대 총사령관이 되어 활동하고 있었다. 이런 연유로 대정중학교 교사와 학생뿐 아니라 지역민들 또한 토벌대의 주요 감시 대상이 되었다. 표적의 대상은 대정중학교를 넘어 인근 한림(수산)중학교, 신창중학교, 안덕고등공민학교 학생들에게까지 미쳤다. 많은 수의 재학생과 졸업생이 예비검속자로 분류되어 희생된 것으로 알려졌다.
모슬포항은 1918년경 일제에 의해 개발되어 정기 항로와 어업의 거점이 되었다. 이후 행정관서와 교육기관은 들어서면서 대정면의 중심으로 자리 잡았다. 대정중학교는 1946년 개교하였으나 교명이 바뀐 1950년 8월 이후에는 제주도 서남부권을 대표하는 학교가 되었다.
한국전쟁 이후 제주도 전체에 약 10만 명의 피난민이 유입되면서 이곳도 학생 수가 크게 늘어 학년별로 5학급, 310명 정도 규모였다고 한다. 여기에 군인과 경찰까지 주둔하게 된 것이었다.
예비검속의 거점이었던 초창기 대정중학교 모습 그리고 섯알오름 학살과 관련하여 보다 구체적인 사실과 이후 처리 과정은 하편에서 이어가겠다.
선명완 담쟁인대안교육연구소장
선명완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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