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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공연 <클라우스 메켈레 & 로열 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 / 사진출처. ⓒ 구본숙
서든어택4월6일

2017년 통영에서 16세의 로자코비치를 봤었다. 게르기예프가 지휘한 마린스키 오케스트라와 이번처럼 브루흐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을 연주했었다. 어린 나이답지 않게 여유 있는 연주였다. 레오니드 코간, 헨릭 셰링, 올레그 카간, 크리스티앙 페라스 같은 바이올린 거장들의 영향을 받았다는 로자코비치는 장고 아파트 매매 라인하르트, 에릭 클랩튼, 비틀스, 지미 헨드릭스처럼 다양한 장르의 명인들을 즐겨 듣는 유연성도 갖췄다. 2023년 파리에서 블랙핑크와 협연하며 그의 이름을 널리 각인시킨 일도 우연은 아니었던 셈이다. 
진지하고 다정한 바이올린
8년 전에 비하면 로자코비치는 부쩍 성숙한 신사의 이미지로 다가왔다. 부드럽고 아련한 전주에 국민은행 카드사 이어 로자코비치의 활이 긋는 바이올린은 한결 가깝게 들렸다. 템포를 여유 있게 가져가면서 총주(악단 연주 부분)에서 격정적인 악구를 소화하기 시작했다. 한 음 한 음 몸짓과 함께 풀어내는 연주가 안정적이었다. 오케스트라의 오보에가 협연자의 바이올린에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비브라토와 함께 고음을 낼 때 로자코비치의 앞머리도 함께 떨렸다. 메켈레는 곡의 비감을 카드론 신용등급 애써 과장하지 않으며 웅크린 채 춤추듯 지휘했다. 격정적인 부분에서는 오케스트라의 음량이 더욱 적극적으로 무대를 뒤덮으며 로자코비치의 영역을 넘어왔다. 묵직함이 느껴지는 큰 규모임에도 오케스트라 사운드는 깔끔하고 투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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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공연 <클라우스 메켈레 & 로열 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 / 사진출처. ⓒ 구본숙


2악장에서 바이올린의 독백을 뒷받침하는 현과 관이 든든했다. 운궁을 과시하기보다는 살짝 띄우는 연주였다. 조응하는 반주가 노을처럼 물들어갔다. 넉넉한 활쓰기는 명료한 음을 만들어냈다. 때로는 관악기처럼 들리는 바이올린 연주도 있는데, 나긋나긋 결을 잘 유지하는 로자코비치의 1713년산 스트라디바리우스는 현악기의 특징을 고스란히 들려줬다. 자의적인 바이올린의 느린 독백은 파스텔 톤의 우아함으로 번져가며 듣는이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 했다. 곡의 절정감을 지속시키며 조심스레 부드럽게 끝을 맺었다. 
3악장에서 활짝 피어난 관현악 위에 마음껏 펼치는 바이올린의 고음이 상쾌했다. 자연스럽고 자발적인 협주곡의 전형이랄까. 바이올린은 물기가 촉촉하고 힘이 넘쳤다. 그 힘이 한데 쏠리지 않고 분산되고 조절하는 느낌이었다. 빨라지는 피날레에서도 바이올린은 여유롭게 속도를 조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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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공연 <클라우스 메켈레 & 로열 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 / 사진출처. ⓒ 구본숙


앙코르 첫 곡은 이자이 무반주 소나타 3번 ‘발라드’. 자주 들을 수 있지만 편안하게 듣기 힘든 이 난곡에서 로자코비치는 기교적 굽이보다는 브레이크잠김방지시스템(ABS)이 작동되는 승용차처럼 부드러운 연결을 선보였다. 두 번째 앙코르는 바흐 파르티타 2번(BWV1004) 중 사라방드였다. 홀을 가득 채우는 바이올린 한 대의 음색에 취하는 시간이었다. 로자코비치는 이번 협연에서 쇼맨십 없이 진지하면서도 음악을 다정하게 전달하며,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는 성숙함을, 처음 접하는 이들에게는 호감을 어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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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공연 <클라우스 메켈레 & 로열 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 / 사진출처. ⓒ 구본숙


음악의 노을, 쾌감의 황홀경을 선사하다
휴식시간 뒤 말러 교향곡 5번을 연주하기 위해 등장한 메켈레는 큰 체구 때문인지 아직 서른이 안 된 청년으로 보이지 않았다. 트럼펫 한 대의 팡파르가 점점 커졌다. 총주도 끝이 둥글게 다가왔다. 현은 관이 이어주고 관은 현이 잡아주는, 음반에서 듣던 RCO 특유의 사운드가 낯익었다. 고급스러운 장송행진곡이었다. 슬픔보다 우아함이 전면에 부각됐다. 떨구는 듯 절망적인 발걸음과 거리가 있었다. 금관은 달콤했다. 그야말로 ‘벨벳의 현, 황금의 관’이라는 묘사가 어울렸다. 느릿한 템포에 음의 입자에는 정보량이 많았다. 바이올린 연주자들의 꿈꾸는 듯한 표정도 장송이라기보다는 힐링에 가까웠다. 메켈레의 몸짓은 거친 부분을 거칠게 주문하는 듯했지만 따스한 트럼펫과 명쾌한 총주가 도드라졌다.
관과 현의 움직임이 다 보이는 듯한 투명함은, 들여다보이는 피부를 지녀 몸속의 움직임이 고스란히 보이는 양서류를 연상시켰다. 목관과 금관이 일정한 두께로 같은 색채와 결을 유지하고 움직이는 모습은 서로 연결된 하나의 악기 같았다. ‘이런 연주로 말러를 처음 듣는다면 어렵다는 선입견이 줄어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넉 대의 플루트와 석 대의 오보에를 위시한 목관군이 일사불란했다. 부드러운 팀파니의 조심스러운 주제 선율에 이어 통속적인 색채가 번지는 듯했지만 기존의 고급스러운 기조를 바꾸지는 못했다. 트럼펫을 위시한 금관 사운드는 과도할 정도로 뛰어났다. 아무리 칭찬해도 모자랄 정도의 음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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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공연 <클라우스 메켈레 & 로열 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 / 사진출처. ⓒ 구본숙


2악장 도입부에서 격렬해지며 온도 차가 나기 시작했다. 거칠게 던지듯 포효하는 현악기의 윤기가 관악군과 당당하게 맞서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첼로가 슬픈 선율을 긋고 목관 악기들이 보이지 않는 울타리를 쳤다. 호른과 목관이 목 놓아 우는 듯한 부분에서도 부서지지 않고 제 모습을 유지하는 경이로운 사운드였다. 탄식 같은 첼로군의 연주는 배음이 짙고 풍성해 입체감이 느껴졌다. 그 사이를 밀고 들어오는 목관과 금관이 너무나 뚜렷했다. 분명 말러의 고통이 투영된 악장일 텐데, 지극한 음의 쾌감으로 황홀하다니 아이러니였다. 관과 현이 전체가 움직이는 모습은 흡사 거대한 노을 같았다. 숱한 총주의 충돌에서 귀를 거스르는 날카로운 부분이 없었다. 모두가 융화되며 빛나는 앙상블이었다. 단원 누구도 악단 사운드 뒤에 익명으로 숨으려 하지 않고 당당하게 자신의 소리를 낼수록 더 투명해진다면, 오케스트라 앙상블의 이상향으로 부를 만하지 않을까.
호른 수석 케이티 울리의 힘찬 소리
3악장 스케르초에서는 호른 수석 케이티 울리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호른의 따스함과 빡빡한 클라리넷, 부드러운 플루트가 조화를 이뤘다. 저역 현과 관이 윤곽을 확실히 했다. 이 곡에서 보통 1·2악장과 3악장은 차별화되곤 하는데 그 변별력이 적었다. 호른을 포함해 금관악기 주자들의 호흡이 놀랄 만큼 길었고 피치카토를 주고받을 때는 고요해지다가 흐름이 소강상태를 보이기도 했다. 이곳에서 메켈레의 지휘는 명쾌함과는 거리가 있었고 답답함이 두드러졌다. 
하프가 현에 녹아들면서 4악장 아다지에토가 시작됐다. 더블베이스의 짙은 색채 위로 감미로운 하프가 탐미적으로 울렸다. 따스한 현의 물결 속에 바이올린이 고혹적으로 빛났다. 거대한 날개를 접는 듯한 하강 음형 속에서 스러져가는 음의 자취가 덧없으면서도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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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공연 <클라우스 메켈레 & 로열 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 / 사진출처. ⓒ 구본숙


미처 달콤한 꿈이 깨지도 않은 채 새들이 지저귀는 아침을 맞이하듯 5악장이 시작됐다. 현악군의 푸가는 베토벤 교향곡 5번 ‘운명’의 마지막 악장을 상기시키며 ‘암흑에서 광명으로’의 구도를 확실히 했다. 베토벤보다도 당도가 높은 말러 5번 종악장이었다. 메켈레와 RCO는 애매한 구석이 하나도 없는 무애의 경지로 달음박질했다. 호른의 활약이 여기서도 발군이었다. 전진하는 힘이 다른 악장들보다 훨씬 강했다. 의도적인 절제인지 방임인지 모르지만 여기서도 지휘자 메켈레의 흥분과 쏠림은 없었다. 일견 발랄해 보였지만 차분히 끝까지 이어가는 신중함이 눈에 띈 접근이었다. 더욱 거대해진 총주는 오디오로 경험하기 어려운 블렌딩에 수렴해갔다. 
메켈레의 지휘에서 눈에 띈 부분은 위엄을 벗어던진 홀가분함과 소박함이었다. 말러 교향곡 5번을 ‘소리의 환희와 빛의 교향악’으로 담아낸 건 메켈레의 의도였을지, 아니면 RCO의 전통과 단원 개개인의 역량이었을지는 확실치 않다. 지휘만 봤을 때 메켈레는 말러 교향곡의 맥락과 전통을 중시하는 애호가들에게 여러 의문부호를 남겼다. 그러나 그런 접근이 역설적으로 RCO의 음색과 역량을 더 확연하게 부각시켰다.
글 류태형(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 음악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