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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를 그만 무어라 전에도 얘긴 마치 애써[이완우 기자]
▲ 남원 사매면 재궁곡 은행나무
ⓒ 이완우
전북 남원은 천년의 시간이 층층이 쌓인 고을이다. 사매면 재궁곡 은행나무, 대산면 풍악산 석불좌상과 대산면 봉황대 암각화에서 오랜 세월 바다이야기게임장 동안 자연과 신앙, 사람이 함께한 자취를 확인할 수 있다.
지난 13일, 여명이 남원 사매면 수동마을 산골짜기를 물들이고 있었다. 이 마을의 노유재 앞 1500년 수령 재궁곡 은행나무를 보름 만에 다시 찾았다(관련 기사: 1500살 은행나무 마을, 명당 소리 들었다네요). 은행나무는 약 2억 년 전 중생대 쥐라기 지질 오리지널골드몽 시대부터 은행나무 속(屬) 자체가 존재해 '살아 있는 화석'이라 불린다. 가을이 깊어 가면서 노랗게 단풍 든 남원 재궁곡 은행나무는 천년 세월을 거듭했을 가을의 향연을 은은하게 펼치고 있었다.
재궁곡 은행나무는 오래도록 마을 신앙과 공동체의 구심점이었다. 여명의 그늘이 재궁곡 골짜기에 남아 있는데, 1500년 수령 은행나무의 노란 자태가 10원야마토게임 여명의 골짜기를 환하게 밝히고 있었다.
석불좌상을 자세히 들여다보다
야마토통기계▲ 남원 사매면 재궁곡 은행나무와 수동마을 노유재
ⓒ 이완우
릴게임뜻
▲ 남원 대산면 풍악산 석불좌상
ⓒ 이완우
남원 사매면 수동마을 재궁곡 은행나무 단풍을 살펴보고, 남쪽으로 9km 거리의 대산면 신계리 풍악산(604.7m) 기슭의 석불좌상(해발 282m)을 찾아갔다. 고려 초기에 조성한 것으로 보이는, 이 풍악산 석불좌상은 신계리 마애불좌상으로 알려졌다. 남쪽을 바라보는 석불좌상에 아침 햇살이 비쳐서 불상의 얼굴과 광배가 밝게 비쳤다. 부처의 천년 미소가 아침 햇살에 은은했다.
이 석불좌상은 수직으로 선 연꽃잎 한 장 형상의 높이 3.4m 바위에 부조로 새겨졌다. 자연 암반에 결가부좌 자세를 새긴 석공의 솜씨가 예사롭지 않았다. 수인(手印)은 왼손을 무릎 위에 손바닥을 위로 하여 무엇을 받치는 듯하고, 위의 오른손은 배 앞에서 손등을 보이며 검지와 새끼손가락을 펴고 있었다. 수인이 색다른 모양으로 약간 어색한 자세여서 한참을 살펴보았다.
이 석불좌상의 광배는 천년의 세월을 이기고, 어제 조각을 새긴 듯 선명하여 신비롭기까지 하였다. 석공의 정성이 담긴 광배의 무늬를 천천히 살펴보았다.
▲ 남원 사매면 풍악산 석불좌상, 광배와 수인
ⓒ 이완우
풍악산 석불좌상의 광배는 여러 겹의 원형 무늬로 정성스럽게 조각되어 섬세함이 돋보인다. 부처의 머리 뒤에는 지름 1.2m의 두 겹 원이 돋을새김으로 둘려 있고, 그 안에는 꽃잎 열두 장의 연꽃 한 송이가 가득 피어 있다.
두 겹 원의 바깥 둘레에는 지름 9cm의 구슬 서른 개가 주련(珠聯)처럼 줄 맞춰 새겨졌으며, 그 바깥에는 불꽃 모양의 구슬형 화염(화염) 서른아홉 개가 둘러 있다. 어깨 바깥쪽에는 구슬 일곱 개가 주련의 중간을 잇듯 좌우에 새겨져 있다.
구슬과 화염을 하나하나 구분하며 몇 번이고 세어보았다. 불상 아래에는 8개의 사각 구멍이 뚫려 있어, 아마 나무 막대를 대고 마루를 놓은 흔적으로 보였다. 스님 한 분이 아래쪽에서 석불좌상을 향해 천천히 올라오고 있었다. 인사를 드리자, 스님은 석불좌상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법명을 여쭈었으나, 스님은 미소로 답하셨다.
"이 부처님이 남원 신계리 마애불좌상이라고 알려졌지만, 원래 사찰의 작은 건물인 닷집 안에 모셔졌습니다. 그러니 이 불상을 마애불이라 부르긴 어렵습니다. 석가모니불로서 항마촉지인의 수인을 하고 있는데, 바위에 얕게 부조되어 손 모양이 다소 변형된 듯합니다. 광배가 섬세하고 선명한 것은 닷집 안에 모셔져 비바람에 의한 세월의 풍화를 피했기 때문이지요."
산길을 내려오다 등산하던 지역 주민 한 분을 만났다. 그에게서 이 지역에 전해 내려오는 석불좌상의 이야기를 들었다.
"풍악산 아래 신계리 마을에서 조상 대대로 4대째 살고 있어요. 우리 동네 사람들은 이 부처님을 미륵부처라고 부르죠. 어린 시절엔 학교에서 소풍을 와서, 지금 석불좌상 앞의 넓은 터에서 200명 넘게 놀곤 했어요. 지금 불상 앞에 쌓인 석축은 옛날에는 없었다고 합니다."
▲ 남원 대산면 풍악산 석불좌상
ⓒ 이완우
남원 지역에는 오래전에 풍악산 석불좌상 터에서 손바닥 크기의 청동 입상이 출토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그 청동 입상은 활과 화살을 든 형태였다. 신장상(불교의 호법신 상)으로 알려졌지만, 무사의 모습으로도 보인다고 한다. 이러한 점 때문에 풍악산 석불좌상이 후백제의 왕 견훤의 형상을 반영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견해도 있다.
남원 지역에 전해지는 풍악산 석불좌상에 관한 설화는 흥미롭고, 수수께끼처럼 의미가 풍부하다. 남원의 교룡산(518.9m)은 풍악산에서 동쪽으로 약 5km 떨어져 있다. 전해지는 이야기에서 교룡산은 남원 고을을 수호하는 용이고, 풍악산에는 여의주 바위가 있다. 교룡산의 용이 풍악산의 여의주를 물고 승천하면, 남원 고을을 지키는 용이 없어지기 때문에, 풍악산 여의주 바위에 부처님을 새겨 모셨다는 것이다. 용이 부처님이 새겨진 여의주를 물고 하늘로 올라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풍악산 석불좌상의 원형 광배 둘레에 새겨진 구슬과 구슬형 화염 무늬는 여의주의 이미지를 형상화한 것으로 보인다. 비교하면, 충남 태안 마애석불입상의 광배를 기본으로 하여 구슬의 여의주 이미지를 덧붙인 듯한 느낌이다.
교룡산의 용 설화를 관점으로 보면, 풍악산 자체가 교룡산 앞의 커다란 여의주와 같겠다. 풍악산의 여의주 이미지가 결국 풍악산 석불좌상으로 구체화 된 셈이다. 단풍은 나무가 진화하며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적응한 지혜의 결정체라고 볼 수 있다. '단풍나무 산'이라는 풍악산의 이름은 곧 '여의주의 산'이란 의미와 연결된다. 남원 교룡산과 풍악산 석불좌상은 마치 수수께끼의 문을 여는 듯한 느낌을 준다.
수 천년 전 암각화에 숨은 의미
▲ 남원 교룡산, 풍악산 석불좌상 부근에서 본 풍경
ⓒ 이완우
▲ 남원 대산면 봉황대 풍경
ⓒ 이완우
풍악산 석불좌상에서 남쪽으로 약 4km 떨어진 대산면 대곡리 봉황대 선사시대 암각화를 찾아갔다. 봉황대는 바위가 겹겹이 쌓인 작은 구릉으로, 하대마을 앞 하천 근처에 있다. 이곳은 봉황이 날개를 편 비봉포란(飛鳳包卵) 명당 형국으로 알려져 있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봉황이 대나무 열매(죽실)를 먹는 지역이라 '대실'이라 불렀다가 지금의 '대곡리'가 되었다고 한다. 봉황대는 봉황의 알에 해당한다.
연못 옆 봉황정(해발 98m) 위쪽에는 봉황대(鳳凰臺) 선사시대 암각서가 있으며, 약간 위 바위(해발 108m)에는 암각화가 새겨져 있다. 그러나 풍화가 심해 사각형 문양 한두 점 외에는 대부분 잘 구별되지 않았다.
▲ 남원 대산면 봉황대 선사시대 암각화와 암각서 바위들
ⓒ 이완우
이 암각화는 2천 년 전에 화강암 바위 표면에 선각 기법으로 새긴 것으로 추정되며, 선사(청동기)시대 조형 양식을 보여준다고 한다. 봉황정 위편 바위 두 곳에서도 암각화를 확인할 수 있었지만, 마모가 심하여 기하학 문양 대부분은 판별하기 어려웠다. 별 모양을 새긴 성혈(星穴) 바위 두세 개가 확인 되었다.
기하학 문양 대부분은 동심원, 방사형, 사각형 격자, 삼각형, 막대, U자 형태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동심원 방사형 문양은 태양 숭배와 농경 풍요를 상징하며, 점들이 선을 이루어 별자리나 씨앗의 배열을 표현한 것으로 해석된다. 사각형 격자형 문양은 밭과 농경을, 삼각형과 막대는 수확한 곡물 운반 도구를 나타내는 것으로 보인다.
울산 반구대 암각화 등 다른 선사시대 암각화가 주로 동물과 사실적 수렵 생활을 기록한 것과 달리, 이곳 암각화는 추상적 기하 문양으로 상징적 의미를 강조한다. 이를 통해 농경 문화 정착을 보여주며, 문화적·역사적 의의가 크다고 할 수 있다.
▲ 남원 대산면 봉황대 성혈 바위와 봉황대 정상 풍경
ⓒ 이완우
깊어 가는 가을 날 아침, 천년 세월을 간직하며 의미가 깊은 남원의 역사 문화적 유산을 탐방하였다. 재궁곡 은행나무, 풍악산 석불좌상과 봉황대 암각화는 그 시간의 흐름을 고스란히 품으며 서로 가깝게 이웃하고 있었다. 부처의 미소와 기하 문양, 설화와 상징을 통해 남원의 풍경과 문화를 새롭게 느껴보았다.
아침 안개가 서서히 걷히고, 부드럽고 밝은 햇살이 산허리를 감싸고 있었다. 이날 오전 10시부터 예정된 일정 때문에 남원 대산면 봉황대를 떠나 임실 치즈테마파크로 향했다. 자동차로 약 25분 거리였다.
▲ 남원 대산면 봉황대와 풍악산 풍경
ⓒ 이완우 기자 admin@seastorygame.top
▲ 남원 사매면 재궁곡 은행나무
ⓒ 이완우
전북 남원은 천년의 시간이 층층이 쌓인 고을이다. 사매면 재궁곡 은행나무, 대산면 풍악산 석불좌상과 대산면 봉황대 암각화에서 오랜 세월 바다이야기게임장 동안 자연과 신앙, 사람이 함께한 자취를 확인할 수 있다.
지난 13일, 여명이 남원 사매면 수동마을 산골짜기를 물들이고 있었다. 이 마을의 노유재 앞 1500년 수령 재궁곡 은행나무를 보름 만에 다시 찾았다(관련 기사: 1500살 은행나무 마을, 명당 소리 들었다네요). 은행나무는 약 2억 년 전 중생대 쥐라기 지질 오리지널골드몽 시대부터 은행나무 속(屬) 자체가 존재해 '살아 있는 화석'이라 불린다. 가을이 깊어 가면서 노랗게 단풍 든 남원 재궁곡 은행나무는 천년 세월을 거듭했을 가을의 향연을 은은하게 펼치고 있었다.
재궁곡 은행나무는 오래도록 마을 신앙과 공동체의 구심점이었다. 여명의 그늘이 재궁곡 골짜기에 남아 있는데, 1500년 수령 은행나무의 노란 자태가 10원야마토게임 여명의 골짜기를 환하게 밝히고 있었다.
석불좌상을 자세히 들여다보다
야마토통기계▲ 남원 사매면 재궁곡 은행나무와 수동마을 노유재
ⓒ 이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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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원 대산면 풍악산 석불좌상
ⓒ 이완우
남원 사매면 수동마을 재궁곡 은행나무 단풍을 살펴보고, 남쪽으로 9km 거리의 대산면 신계리 풍악산(604.7m) 기슭의 석불좌상(해발 282m)을 찾아갔다. 고려 초기에 조성한 것으로 보이는, 이 풍악산 석불좌상은 신계리 마애불좌상으로 알려졌다. 남쪽을 바라보는 석불좌상에 아침 햇살이 비쳐서 불상의 얼굴과 광배가 밝게 비쳤다. 부처의 천년 미소가 아침 햇살에 은은했다.
이 석불좌상은 수직으로 선 연꽃잎 한 장 형상의 높이 3.4m 바위에 부조로 새겨졌다. 자연 암반에 결가부좌 자세를 새긴 석공의 솜씨가 예사롭지 않았다. 수인(手印)은 왼손을 무릎 위에 손바닥을 위로 하여 무엇을 받치는 듯하고, 위의 오른손은 배 앞에서 손등을 보이며 검지와 새끼손가락을 펴고 있었다. 수인이 색다른 모양으로 약간 어색한 자세여서 한참을 살펴보았다.
이 석불좌상의 광배는 천년의 세월을 이기고, 어제 조각을 새긴 듯 선명하여 신비롭기까지 하였다. 석공의 정성이 담긴 광배의 무늬를 천천히 살펴보았다.
▲ 남원 사매면 풍악산 석불좌상, 광배와 수인
ⓒ 이완우
풍악산 석불좌상의 광배는 여러 겹의 원형 무늬로 정성스럽게 조각되어 섬세함이 돋보인다. 부처의 머리 뒤에는 지름 1.2m의 두 겹 원이 돋을새김으로 둘려 있고, 그 안에는 꽃잎 열두 장의 연꽃 한 송이가 가득 피어 있다.
두 겹 원의 바깥 둘레에는 지름 9cm의 구슬 서른 개가 주련(珠聯)처럼 줄 맞춰 새겨졌으며, 그 바깥에는 불꽃 모양의 구슬형 화염(화염) 서른아홉 개가 둘러 있다. 어깨 바깥쪽에는 구슬 일곱 개가 주련의 중간을 잇듯 좌우에 새겨져 있다.
구슬과 화염을 하나하나 구분하며 몇 번이고 세어보았다. 불상 아래에는 8개의 사각 구멍이 뚫려 있어, 아마 나무 막대를 대고 마루를 놓은 흔적으로 보였다. 스님 한 분이 아래쪽에서 석불좌상을 향해 천천히 올라오고 있었다. 인사를 드리자, 스님은 석불좌상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법명을 여쭈었으나, 스님은 미소로 답하셨다.
"이 부처님이 남원 신계리 마애불좌상이라고 알려졌지만, 원래 사찰의 작은 건물인 닷집 안에 모셔졌습니다. 그러니 이 불상을 마애불이라 부르긴 어렵습니다. 석가모니불로서 항마촉지인의 수인을 하고 있는데, 바위에 얕게 부조되어 손 모양이 다소 변형된 듯합니다. 광배가 섬세하고 선명한 것은 닷집 안에 모셔져 비바람에 의한 세월의 풍화를 피했기 때문이지요."
산길을 내려오다 등산하던 지역 주민 한 분을 만났다. 그에게서 이 지역에 전해 내려오는 석불좌상의 이야기를 들었다.
"풍악산 아래 신계리 마을에서 조상 대대로 4대째 살고 있어요. 우리 동네 사람들은 이 부처님을 미륵부처라고 부르죠. 어린 시절엔 학교에서 소풍을 와서, 지금 석불좌상 앞의 넓은 터에서 200명 넘게 놀곤 했어요. 지금 불상 앞에 쌓인 석축은 옛날에는 없었다고 합니다."
▲ 남원 대산면 풍악산 석불좌상
ⓒ 이완우
남원 지역에는 오래전에 풍악산 석불좌상 터에서 손바닥 크기의 청동 입상이 출토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그 청동 입상은 활과 화살을 든 형태였다. 신장상(불교의 호법신 상)으로 알려졌지만, 무사의 모습으로도 보인다고 한다. 이러한 점 때문에 풍악산 석불좌상이 후백제의 왕 견훤의 형상을 반영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견해도 있다.
남원 지역에 전해지는 풍악산 석불좌상에 관한 설화는 흥미롭고, 수수께끼처럼 의미가 풍부하다. 남원의 교룡산(518.9m)은 풍악산에서 동쪽으로 약 5km 떨어져 있다. 전해지는 이야기에서 교룡산은 남원 고을을 수호하는 용이고, 풍악산에는 여의주 바위가 있다. 교룡산의 용이 풍악산의 여의주를 물고 승천하면, 남원 고을을 지키는 용이 없어지기 때문에, 풍악산 여의주 바위에 부처님을 새겨 모셨다는 것이다. 용이 부처님이 새겨진 여의주를 물고 하늘로 올라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풍악산 석불좌상의 원형 광배 둘레에 새겨진 구슬과 구슬형 화염 무늬는 여의주의 이미지를 형상화한 것으로 보인다. 비교하면, 충남 태안 마애석불입상의 광배를 기본으로 하여 구슬의 여의주 이미지를 덧붙인 듯한 느낌이다.
교룡산의 용 설화를 관점으로 보면, 풍악산 자체가 교룡산 앞의 커다란 여의주와 같겠다. 풍악산의 여의주 이미지가 결국 풍악산 석불좌상으로 구체화 된 셈이다. 단풍은 나무가 진화하며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적응한 지혜의 결정체라고 볼 수 있다. '단풍나무 산'이라는 풍악산의 이름은 곧 '여의주의 산'이란 의미와 연결된다. 남원 교룡산과 풍악산 석불좌상은 마치 수수께끼의 문을 여는 듯한 느낌을 준다.
수 천년 전 암각화에 숨은 의미
▲ 남원 교룡산, 풍악산 석불좌상 부근에서 본 풍경
ⓒ 이완우
▲ 남원 대산면 봉황대 풍경
ⓒ 이완우
풍악산 석불좌상에서 남쪽으로 약 4km 떨어진 대산면 대곡리 봉황대 선사시대 암각화를 찾아갔다. 봉황대는 바위가 겹겹이 쌓인 작은 구릉으로, 하대마을 앞 하천 근처에 있다. 이곳은 봉황이 날개를 편 비봉포란(飛鳳包卵) 명당 형국으로 알려져 있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봉황이 대나무 열매(죽실)를 먹는 지역이라 '대실'이라 불렀다가 지금의 '대곡리'가 되었다고 한다. 봉황대는 봉황의 알에 해당한다.
연못 옆 봉황정(해발 98m) 위쪽에는 봉황대(鳳凰臺) 선사시대 암각서가 있으며, 약간 위 바위(해발 108m)에는 암각화가 새겨져 있다. 그러나 풍화가 심해 사각형 문양 한두 점 외에는 대부분 잘 구별되지 않았다.
▲ 남원 대산면 봉황대 선사시대 암각화와 암각서 바위들
ⓒ 이완우
이 암각화는 2천 년 전에 화강암 바위 표면에 선각 기법으로 새긴 것으로 추정되며, 선사(청동기)시대 조형 양식을 보여준다고 한다. 봉황정 위편 바위 두 곳에서도 암각화를 확인할 수 있었지만, 마모가 심하여 기하학 문양 대부분은 판별하기 어려웠다. 별 모양을 새긴 성혈(星穴) 바위 두세 개가 확인 되었다.
기하학 문양 대부분은 동심원, 방사형, 사각형 격자, 삼각형, 막대, U자 형태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동심원 방사형 문양은 태양 숭배와 농경 풍요를 상징하며, 점들이 선을 이루어 별자리나 씨앗의 배열을 표현한 것으로 해석된다. 사각형 격자형 문양은 밭과 농경을, 삼각형과 막대는 수확한 곡물 운반 도구를 나타내는 것으로 보인다.
울산 반구대 암각화 등 다른 선사시대 암각화가 주로 동물과 사실적 수렵 생활을 기록한 것과 달리, 이곳 암각화는 추상적 기하 문양으로 상징적 의미를 강조한다. 이를 통해 농경 문화 정착을 보여주며, 문화적·역사적 의의가 크다고 할 수 있다.
▲ 남원 대산면 봉황대 성혈 바위와 봉황대 정상 풍경
ⓒ 이완우
깊어 가는 가을 날 아침, 천년 세월을 간직하며 의미가 깊은 남원의 역사 문화적 유산을 탐방하였다. 재궁곡 은행나무, 풍악산 석불좌상과 봉황대 암각화는 그 시간의 흐름을 고스란히 품으며 서로 가깝게 이웃하고 있었다. 부처의 미소와 기하 문양, 설화와 상징을 통해 남원의 풍경과 문화를 새롭게 느껴보았다.
아침 안개가 서서히 걷히고, 부드럽고 밝은 햇살이 산허리를 감싸고 있었다. 이날 오전 10시부터 예정된 일정 때문에 남원 대산면 봉황대를 떠나 임실 치즈테마파크로 향했다. 자동차로 약 25분 거리였다.
▲ 남원 대산면 봉황대와 풍악산 풍경
ⓒ 이완우 기자 admin@seastorygame.t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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