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기유첩 실물 전체 최초 공개
그림속 빨려드는 가상 체험 ‘황홀’
박지수의 그림·글씨 진면목 감상







안양박물관 특별전 ‘삼성기유첩 : 그림으로 걷는 안양’의 전시 하이라이트 중 하나인 실감영상실 디지털영상 중 보름달이 아름다운 망월암(望月庵) 야경 장면. 2025.10.16 안양/박상일기자 metro@kyeongin.com



수묵으로 그린 화첩의 풍경이 눈 앞으로 확 펼쳐지면, 몸이 두둥실 떠오른 듯 그림 속으로 빨려든다. 신 수협 선이 된 듯 산모퉁이를 돌아 계곡을 넘어 가파른 산 위로 날아 오르면 삼성과 관악의 풍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운해인듯 바다인 듯 일렁이는 수평선에 섬들이 아득하게 떠오르고, 그 위로 오렌지색 석양이 펼쳐진다. 해가 지고 보석 같은 별이 하늘 가득 모래알 처럼 반짝이는 짙푸른 밤이 온다. 밤바다를 지나는 배 위로 혜성이 지날 때는 나도 모르게 탄성이 터진다 카드소지자대출 . 사람이 만든 빛이 사라진 200년전 밤하늘은 저리 아름다웠을 것이고, 꽃이 피고 새가 날고 비가 내리는 삼성과 관악의 모습이 저리 운치 있었을 것이다.

1826년 늦봄, 문인 박지수가 벗들과 유람하며 만난 관악산과 삼성산의 풍경은 그렇게 시간을 건너뛰어 우리에게 다가왔다. 안양박물관이 16일 개막한 특별기획전 ‘삼성 법인파산 기유첩 : 그림으로 걷는 안양’에서 만날 수 있는 귀중한 경험이다.
200년전 박지수 일행이 만난 관악·삼성의 풍경을 지금 다시 만날 수 있는 것은 박지수가 남긴 ‘삼성기유첩’이 있어 가능했다. 삼성기유첩은 2년전 옥션 경매에 깜짝 등장해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안양의 품에 안긴 귀중한 유산이고, 안양박물관의 대표 소장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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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박물관 특별전 ‘삼성기유첩 : 그림으로 걷는 안양’ 1층 전시장에는 삼성기유첩 실물 원본 전체가 폭별로 나뉘어 소개돼 있다. 그 중 안양 관련 7폭의 그림과 글은 흰 천으로 둘러싸인 전시실 중앙에 별도 배치했다. 흰 천에 새겨진 글씨는 박지수가 여러 필체로 쓴 글을 옯긴 것이 햇살론대출 다. 2025.10.16 안양/박상일기자 metro@kyeongin.com


이번 특별전에서는 삼성기유첩의 실경산수화 11폭과 시문 42수 전체가 최초로 실물 공개됐다. 지난해 개막한 안양박물관 특별전에서 일부가 공개되긴 했지만, 삼성기유첩 실물 전체가 일반에 공개되는 것은 이번이 최초이자 마지막이라고 한다. 박물관측은 이번 특별전을 위해 삼성기유첩을 한쪽한쪽 보존처리해 분리했는데, 전시가 끝나면 다시 원래의 화첩 모습으로 복원되기 때문에 각 쪽으로 펼쳐진 모습은 다시 만날 수 없게 된다.
전시는 특별전시관 1층과 2층에 마련됐다. 특별전시관은 옛 안양사의 초석들이 가지런히 놓여있는 안양사지를 마당 처럼 품고 있어 더 특별하다.
1층 전시는 삼성기유첩의 실물을 만나는 자리다. 전시장 한가운데를 둘러싼 흰 천에는 삼성기유첩의 글씨와 관악·삼성의 풍경을 새겼다. 입구를 들어가 왼쪽에서 가장 먼저 화첩의 서문을 만난다. 동해(東海) 조종진이 쓴 서문에는 “글씨는 원교 이광사의 소신이라 하겠고, 그림은 겸재 정선의 별묵이라 하겠으며, 시는 또한 건재 박종민의 후전이라 하겠다”라고 박지수의 글씨·그림·시를 극찬하는 내용이 담겨있어 삼성기유첩의 가치를 엿보게 한다.



삼성기유첩 제1폭 남자하는 현재 안양박물관 일대를 그렸는데, 관악산에서 흘러내리는 계곡을 비롯한 풍경을 아름답게 표현하고 있다. 그림 왼쪽 아래에는 중초사지 당간지주와 2기의 탑, 인근 마을의 모습이 보인다(붉은색 표시 부분). 2025.10.16 안양/박상일기자 metro@kyeongin.com


1층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안양 관련 화첩 내용을 살펴보는 것이다. 박물관측은 전시장 가운데 천으로 두른 안쪽에 별도로 안양 관련 폭들을 모아놓았다. 첫 폭은 지금의 안양박물관 일대가 담긴 ‘남자하’다. ‘남자하’ 그림 왼쪽 아래에는 국가유산(보물 제4호)으로 지정된 중초사지 당간지주와 2기의 탑, 집들이 촘촘한 마을의 모습이 보이는데, 200년 전에도 당간은 없이 지주만 서 있는 중초사지 당간지주의 모습이 눈길을 끈다. 안양 관련 화첩 내용은 ‘남자하’를 시작으로 ‘염불암’ ‘삼막사’ ‘망해루낙조’ ‘망월암’ ‘불성사’ ‘불성전록망해’로 이어진다. 지금도 삼성·관악산의 백미로 손꼽히는 곳들이다. 멀리 서해 바다까지 바라보며 지는 해를 바라보는 ‘망해루낙조’는 안양9경 중 제4경에 들어있기도 하다.
1층 전시가 200년전 박지수가 남긴 삼성기유첩 실물을 만나는 자리라면, 2층 전시는 디지털기술을 활용해 삼성기유첩을 현실에서 체험하는 자리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전면에 놓인 ‘나도 화가! 나만의 옛 그림’을 만나는데, 삼성기유첩의 주요 그림 위에 내 마음대로 나무·바위·암벽·새·사람 등을 덧씌워 그릴 수 있다. 그림이 완성되면 QR코드를 찍어 내 휴대폰으로 옮기는 것도 가능하다. 그 옆으로는 삼성기유첩 주요 장면 색칠하기와 스탬프 체험도 마련돼 있다.



안양박물관 특별전 ‘삼성기유첩 : 그림으로 걷는 안양’ 2층 전시실에서는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다양한 체험이 가능하다. 사진은 삼성기유첩의 주요 그림 위에 나무·바위·사람 등 각종 구성요소를 마음대로 그려넣을 수 있는 ‘나도 화가! 나만의 옛 그림’ 코너. 2025.10.16 안양/박상일기자 metro@kyeongin.com


체험코너를 지나면 2층 전시의 하이라이트 ‘실감영상실’이 기다린다. 입구에는 ‘봄 물결에 신선 된 듯, 꽃과 석양 전하리라’라는 타이틀이 붙어있는데, 실감영상실을 나설때면 기가막힌 표현이 가슴에 와닿는다. 전면과 바닥까지 영상이 흐르는 실감영상실 바닥에는 모션 기술이 적용돼 관람객의 움직임을 따라 꽃잎과 나뭇잎, 바람과 구름, 빗방울이 흐른다. 200년전 박지수 일행이 된 듯 그림속으로 빨려들어가 삼성·관악을 노니는 경험은 짜릿하기까지 하다.



안양박물관 특별기획전 ‘삼성기유첩 : 그림으로 걷는 안양’이 진행중인 안양박물관 특별전시관 전경. 2025.10.16 안양/박상일기자 metro@kyeongin.com


이번 특별전은 이렇게 삼성기유첩 실물 원본을 만나는 유일한 자리이자,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당시의 모습을 체험하는 소중한 경험의 자리로 마련됐다. 안양 뿐 아니라 관악의 동쪽 과천과 북쪽 서울까지도 아우르는 값진 전시다.
안양박물관측은 “삼성기유첩의 확보와 전시는 지역사회·학계·행정이 함께 이룬 소중한 결실”이라며 “단순한 유물 수집을 넘어 지역사 연구와 문화유산 보존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 이번 전시는, 안양박물관이 지역 정체성을 구현하고 시민과 공유하는 문화의 장으로 나아가는 중요한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안양/박상일 기자 metro@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