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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으로 분명 그래 간이침대의 사실이 기다렸다. 술병을 기자 admin@no1reelsite.com현존하는 국내 최대 선사유적토지구획 정리 과정서청동기시대 집단묘역 발견
2006년 사적 제472호로 지정고인돌, A~K군 무리로 형성가장 규모 큰 A군서 9기 확인
인근 무덤선 간돌검 등 출토도현재 주민공원으로 조성된 후운동·산책하는 공간으로 변신
창원진동리유적(昌原鎭東里遺蹟)은 현존하는 국내 최대 선사시대 유적이다. 선사시대라는 명칭은 200만년 전에 시작된 석기시대를 거쳐 1500년경 전후 청동기시대까지를 일컫는다. 학자들에 따라 약 600만~700만년 전 침팬지와 분지한 시 체리마스터모바일 점부터 선사시대라는 주장도 있지만, 대개는 약 330만년 전 인간이 남긴 도구의 등장을 기점으로 잡는다. 한반도의 청동기시대는 기원전 1500년경에서 기원전 300년경으로 본다.
창원 진동에 가면 선사시대 유적지가 공원으로 조성돼 주변 아파트단지와 다세대 주택가에 둘러싸여 있다. 3000여년 전 구리와 주석을 배합한 릴게임야마토 청동기라는 획기적인 물질로 이 땅에 문명의 초석을 세웠던 선조들께선 콘크리트라는 새로운 물질로 만든 아파트라는 주거시설에 사는 후손들을 어떤 눈으로 볼지 자못 궁금하다.
체리마스터모바일선사시대 지석묘와 고인돌이 보존돼 있는 창원진동리유적지. 공원으로 조성된 후 과거가 현재와 공존하는 공간으로 바뀌었다. 사진은 규모가 가장 큰 ‘고인돌 A군’./김홍섭 작가/
선사시대 지석묘와 고인돌이 보존돼 있는 창 릴게임뜻 원진동리유적지. 공원으로 조성된 후 과거가 현재와 공존하는 공간으로 바뀌었다. 사진은 규모가 가장 큰 ‘고인돌 A군’./김홍섭 작가/
손오공릴게임예시
◇세상을 바꾼 청동기 문화= 청동기시대는 돌을 이용해 도구를 만들었던 석기 대신에 청동기가 주요한 도구로 등장했던 시기다. 청동을 만들기 위해서는 구리와 주석이 필요하며, 이런 광물 자원의 확보와 불을 이용한 야금법이 발달한 당시로는 첨단 문명의 시작이었다. 비유하면 20세기에 발명된 컴퓨터가 세상을 바꾼 혁명과 맞먹을 것이다. 청동기의 획득으로 인류는 석기시대와 비교해 농업 생산율을 높이고 군사력을 향상할 수 있었다. 또 청동기를 다루면서 사회의 비약적인 발전과 더불어 도구와 무기의 다양한 발달로 직업의 분화와 문화 수준의 향상이 일어났다고 역사학자들은 말한다.
선사시대는 구석기시대에서 시작돼 청동기시대에서 끝난다. 이후 철기시대로 넘어가는데 인류문명의 진정한 시작이 철기시대부터라고 보면 맞을 것이다. 그러나 청동기문화가 철기문화를 점화한 것은 분명하다. 달리 구분하자면 기록이 남아있는 역사시대의 전 시대, 즉 문자와 기록이 없는 시대가 선사시대다. 그리고 석기시대나 청동기시대가 전 세계 모든 인류집단에 똑같이 나타난 것은 아니다. 지역에 따라 시기가 빨리 왔거나 늦어지기도 했다. 그것은 한 인류집단이 속한 지역적 특성과 이웃 국가들과의 교류 그리고 주변 국가들의 정치적 영향 등에 따라 각각 시기가 달라진다.
예를 들어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대부분 지역은 신석기시대에서 곧바로 철기시대로 이동한다. 일본은 석기시대 때 이미 이웃 지역으로부터 청동기와 철기가 한 번에 밀려들어 사용되면서 아예 청동기시대가 존재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당시 한반도는 비파형동검, 다뉴세문경 등 고도의 청동 가공기술을 지니고 있었다. 이후 가야를 기반으로 하는 철기문화가 급속히 발전하면서 일본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오늘날 남아있는 청동 유물들은 도구 또는 무기와 종교적인 예식에 쓰이는 물건들이 발견된다. 이후에 도래하는 철기시대의 가장 좋은 도구와 무기는 강철로 만들어진다. 이것은 철에 탄소 내용물이 0.02%에서 1.7% 정도 섞이게 된다. 그래서 강철 무기와 도구는 청동기와 비슷한 무게지만 더욱 강했다.
고인돌 B군. 묘역식 고인돌은 A~K군으로 개별적인 무리를 형성하고 있으며, 각각의 무리들은 둥근 모양, 타원형 모양, 정사각 모양, 직사각 모양들로 이뤄져 있다.
고인돌 B군. 묘역식 고인돌은 A~K군으로 개별적인 무리를 형성하고 있으며, 각각의 무리들은 둥근 모양, 타원형 모양, 정사각 모양, 직사각 모양들로 이뤄져 있다.
◇한반도의 청동기시대= 한반도의 청동기시대는 대체로 기원전 1500여년에서 기원전 300여년 정도로 본다. 이후 초기 가야에서 철을 발견하고 야금기술을 발전시키는데 이 시기가 기원 전후이므로 그 시기에는 청동기와 철기가 함께 사용됐던 것으로 추정한다.
이 시기는 3세기경 중국이 진나라로 통일되면서 그 영향이 한반도를 지나 일본까지 문물과 정치적 영향이 관통하는 시기였다. 초기 가야는 기원전 3세기~1세기경 낙동강 하류와 주변 지역에 형성된 여러 소국 연맹체로 시작된다. 대륙을 통해 들어왔던 문물이 이 지역을 통해 일본으로 건너가고 일본에서는 수렵과 채집활동을 하던 조몬(繩文)시대의 뒤를 이어 농경과 금속도구를 사용한 야요이문화가 시작된 시기다. 한반도에 도래한 청동기 문화는 학자들에 따라 견해가 나뉜다. 한반도의 청동기 문화가 중국의 영향을 받았다는 설과 중국의 영향이 없었고 독자적으로 발전된 문화라는 설이다.
지석묘.
지석묘.
한국의 청동기 유물이 중국적인 영향권이 아니므로 재검토해야 할 여러 문제점을 안고 있다는 설을 보자. 예를 들어 한국의 돌널무덤은 그 분포가 남(南)시베리아, 만주, 한국 등지까지 넓게 퍼져 있는데, 시베리아의 돌널무덤은 기원전 15세기이며, 같은 한국의 돌널무덤에서는 이미 청동기 유물이 나오기 때문에, 한국의 청동기 문화는 오히려 기원전 15세기를 넘어 그 이전으로 올라갈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은 여러 논란이 명확하게 정리되지 않은 상태다.
과거에는 한국의 청동기 유물은 북한(北韓) 지역에만 있다는 설도 있었지만, 지금에 와서는 한반도 전역에서 청동기 유물이 출토되고 있어 논란은 정리됐다. 현재 청동기 유물의 분포를 보면, 함경북도에서부터 전라남도와 경상남도까지 광범위하게 출토되고 있다. 광복 후 한국인에 의한 고고학 연구가 활발해짐에 따라 한국에도 독자적인 청동기 문화가 존재한다는 것이 차츰 알려지게 됐고, 또한 각처에서 청동기 유물이 나타남으로써 물적 증거가 뒷받침되고 있다. 따라서 진동리 선사유적지는 앞으로 한반도 청동기 문화의 정착과 발전과정을 밝힐 수 있는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고인돌 C군.
고인돌 C군.
◇사적 제472호 진동리 선사유적=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면 진동리 130번지 일원에 위치하는 창원 진동리 유적은 토지구획정리사업 과정에서 발견됐다. 발굴조사 결과 국내 최대 규모의 청동기시대 집단묘역이 확인된 유적으로 대형 지석묘와 석관묘가 집단으로 발굴됐다. 위치는 태봉천과 진동천에 의해 넓게 형성된 충적지에 자리 잡았다. 2004년 9월부터 2005년 5월까지 약 8개월에 걸쳐 경남발전연구원 역사문화센터에서 발굴 조사했고, 2006년에 사적 제472호로 지정된다.
현재 이 유적지는 공원으로 조성돼 넓은 지형에 지역민들이 운동을 하거나 가벼운 스포츠를 즐기기도 한다. 가끔은 가족 단위 혹은 단체로 관람을 오기도 하는데 공원에 산재한 지석묘나 고인돌이 유적이라기보다는 공원을 장식하는 인위적 장식물이거나 설치미술품 같은 느낌이 들어 사진을 찍는 내내 비현실적인 마음이 들었다.
석관묘.
석관묘.
이곳에서 발굴된 유물 중 청동기시대의 것으로는, 묘역식 고인돌 무리 11개, 기반식 고인돌 1기, 돌널무덤 45기, 밭, 구덩이, 돌무지(고인돌이나 돌널무덤 둘레에 보호물로 쌓아 둔 돌 더미) 등이 발굴돼 친절한 설명과 함께 나무데크로 뷰포인트까지 조성해 놓았다.
묘역식 고인돌은 A~K군으로 개별적인 무리를 형성하고 있으며, 각각의 무리들은 둥근 모양, 타원형 모양, 정사각 모양, 직사각 모양들로 이루어져 서로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다. 묘역은 가장자리에 구획돌만 돌린 것, 구획돌을 설치하고 내부에 돌을 쌓은 것, 구획돌 없이 돌을 쌓은 것으로 구분이 된다. 또 단독으로 만들어진 것도 있지만 2~3기가 모여있는 것도 있다.
발굴된 전체 모습으로 보면, 이 시기 마을은 장방형 혹은 원형의 수혈 주거지로 구성되고, 무덤은 지석묘, 적석묘, 석곽묘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벼를 비롯한 곡물 농사가 시작됐고, 무덤의 부장품들은 물론 청동기류다. 비파형동검 등의 무기와 다뉴기하학문경(다뉴세문경) 등의 의기가 있는데, 특히 다뉴기하학문경은 초기 철기시대 한반도에서 제작된 청동 거울로, 뒷면에 정교한 기하학적 무늬가 새겨진 것이 특징이다. 가느다란 선으로 삼각형과 동심원, 방사선 등 다양한 기하학적 문양이 세밀하게 장식돼 있다. 머리카락보다 가는 선으로 정교한 무늬를 새겼는데, 지름 19.6㎝에 0.2㎜의 반경으로 1만3000여 개의 선을 그려 넣었다고 한다. 이는 현대 기술로도 재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정밀한 것이다.
그래서 청동기 문화의 정점을 보여주는 유물로, 한반도 청동기 문화의 기술적·예술적 성취를 상징한다. 주로 제사용 도구, 권력자의 상징물 등으로 사용됐을 것으로 유추한다. 다만 아직은 이 유물들이 공개되지 않고 있다.
◇규모가 가장 큰 A군 대형 묘역= 규모가 가장 큰 A군에서는 고인돌 9기가 확인됐는데, 이 중 발굴 조사된 것은 A-1호이다. 이것은 직경 20.2m의 둥근꼴 묘역 시설에 도랑이 있고, 묘역의 가장자리에서 중앙으로 갈수록 높이가 높아진다. 묘역 내부는 잔자갈을 쌓은 후 그 위에 흑갈색 흙을 여러 번 쌓고 다시 그 위에 돌을 깔았다. 가장자리의 구획돌은 길이 방향으로 세워서 놓았다.
묘역 중앙에서 길이 3.2m, 너비 1.5m 규모의 지상식 무덤방이 확인됐다. 무덤방 내부에서 간돌검 1점, 간돌화살촉 3점이 출토됐고, 도랑에서 붉은간토기가 반으로 깨진 상태로 출토됐다.
기반식 고인돌은 원래 이 일대에 8기 이상이 무리 지어 분포하고 있었지만, 대부분 파괴되고 2기만 남아있으며, 그중 1기가 조사된 것이다. 덮개돌 주변에 많은 민무늬토기 조각들이 흩뿌려지듯이 출토된 점에서 의례 행위가 있었다고 추정된다. 돌널무덤은 밭과 묘역식 고인돌 사이의 공간에 분포한다. 열을 이루거나 2~5기씩의 작은 무리들로 나뉘어져 있다. 무덤방은 벽면을 널돌로 쌓은 것과 깬돌로 쌓은 것으로 각자 구분된다.
한편, 창원진동리유적의 북쪽 인근에는 1980년에 수습 조사된 무덤에서 비파형동검(琵琶形銅劍) 1점과 간돌검 1점, 간돌화살촉 2점, 붉은간토기 1점이 한꺼번에 출토돼 당시에 많은 관심을 끌기도 했다.
창원진동리유적이 자리한 곳은 진동만에서 함안 지역으로 통하는 교통로인 점에서 해안과 내륙을 잇는 지리적 요충지에 해당한다. 이러한 지리적 조건은 청동기시대에 경상남도 내륙과의 교류를 통해 이 유적이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이 됐다.
현재 묘역식 고인돌이 분포하는 곳을 중심으로 묘역식 고인돌 7개소(26기), 기반식 고인돌 1기, 선돌 2기, 쉼터 4곳과 탐방로로 이루어진 유적공원이 조성돼 있다. (소설가)
2006년 사적 제472호로 지정고인돌, A~K군 무리로 형성가장 규모 큰 A군서 9기 확인
인근 무덤선 간돌검 등 출토도현재 주민공원으로 조성된 후운동·산책하는 공간으로 변신
창원진동리유적(昌原鎭東里遺蹟)은 현존하는 국내 최대 선사시대 유적이다. 선사시대라는 명칭은 200만년 전에 시작된 석기시대를 거쳐 1500년경 전후 청동기시대까지를 일컫는다. 학자들에 따라 약 600만~700만년 전 침팬지와 분지한 시 체리마스터모바일 점부터 선사시대라는 주장도 있지만, 대개는 약 330만년 전 인간이 남긴 도구의 등장을 기점으로 잡는다. 한반도의 청동기시대는 기원전 1500년경에서 기원전 300년경으로 본다.
창원 진동에 가면 선사시대 유적지가 공원으로 조성돼 주변 아파트단지와 다세대 주택가에 둘러싸여 있다. 3000여년 전 구리와 주석을 배합한 릴게임야마토 청동기라는 획기적인 물질로 이 땅에 문명의 초석을 세웠던 선조들께선 콘크리트라는 새로운 물질로 만든 아파트라는 주거시설에 사는 후손들을 어떤 눈으로 볼지 자못 궁금하다.
체리마스터모바일선사시대 지석묘와 고인돌이 보존돼 있는 창원진동리유적지. 공원으로 조성된 후 과거가 현재와 공존하는 공간으로 바뀌었다. 사진은 규모가 가장 큰 ‘고인돌 A군’./김홍섭 작가/
선사시대 지석묘와 고인돌이 보존돼 있는 창 릴게임뜻 원진동리유적지. 공원으로 조성된 후 과거가 현재와 공존하는 공간으로 바뀌었다. 사진은 규모가 가장 큰 ‘고인돌 A군’./김홍섭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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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청동기 문화= 청동기시대는 돌을 이용해 도구를 만들었던 석기 대신에 청동기가 주요한 도구로 등장했던 시기다. 청동을 만들기 위해서는 구리와 주석이 필요하며, 이런 광물 자원의 확보와 불을 이용한 야금법이 발달한 당시로는 첨단 문명의 시작이었다. 비유하면 20세기에 발명된 컴퓨터가 세상을 바꾼 혁명과 맞먹을 것이다. 청동기의 획득으로 인류는 석기시대와 비교해 농업 생산율을 높이고 군사력을 향상할 수 있었다. 또 청동기를 다루면서 사회의 비약적인 발전과 더불어 도구와 무기의 다양한 발달로 직업의 분화와 문화 수준의 향상이 일어났다고 역사학자들은 말한다.
선사시대는 구석기시대에서 시작돼 청동기시대에서 끝난다. 이후 철기시대로 넘어가는데 인류문명의 진정한 시작이 철기시대부터라고 보면 맞을 것이다. 그러나 청동기문화가 철기문화를 점화한 것은 분명하다. 달리 구분하자면 기록이 남아있는 역사시대의 전 시대, 즉 문자와 기록이 없는 시대가 선사시대다. 그리고 석기시대나 청동기시대가 전 세계 모든 인류집단에 똑같이 나타난 것은 아니다. 지역에 따라 시기가 빨리 왔거나 늦어지기도 했다. 그것은 한 인류집단이 속한 지역적 특성과 이웃 국가들과의 교류 그리고 주변 국가들의 정치적 영향 등에 따라 각각 시기가 달라진다.
예를 들어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대부분 지역은 신석기시대에서 곧바로 철기시대로 이동한다. 일본은 석기시대 때 이미 이웃 지역으로부터 청동기와 철기가 한 번에 밀려들어 사용되면서 아예 청동기시대가 존재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당시 한반도는 비파형동검, 다뉴세문경 등 고도의 청동 가공기술을 지니고 있었다. 이후 가야를 기반으로 하는 철기문화가 급속히 발전하면서 일본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오늘날 남아있는 청동 유물들은 도구 또는 무기와 종교적인 예식에 쓰이는 물건들이 발견된다. 이후에 도래하는 철기시대의 가장 좋은 도구와 무기는 강철로 만들어진다. 이것은 철에 탄소 내용물이 0.02%에서 1.7% 정도 섞이게 된다. 그래서 강철 무기와 도구는 청동기와 비슷한 무게지만 더욱 강했다.
고인돌 B군. 묘역식 고인돌은 A~K군으로 개별적인 무리를 형성하고 있으며, 각각의 무리들은 둥근 모양, 타원형 모양, 정사각 모양, 직사각 모양들로 이뤄져 있다.
고인돌 B군. 묘역식 고인돌은 A~K군으로 개별적인 무리를 형성하고 있으며, 각각의 무리들은 둥근 모양, 타원형 모양, 정사각 모양, 직사각 모양들로 이뤄져 있다.
◇한반도의 청동기시대= 한반도의 청동기시대는 대체로 기원전 1500여년에서 기원전 300여년 정도로 본다. 이후 초기 가야에서 철을 발견하고 야금기술을 발전시키는데 이 시기가 기원 전후이므로 그 시기에는 청동기와 철기가 함께 사용됐던 것으로 추정한다.
이 시기는 3세기경 중국이 진나라로 통일되면서 그 영향이 한반도를 지나 일본까지 문물과 정치적 영향이 관통하는 시기였다. 초기 가야는 기원전 3세기~1세기경 낙동강 하류와 주변 지역에 형성된 여러 소국 연맹체로 시작된다. 대륙을 통해 들어왔던 문물이 이 지역을 통해 일본으로 건너가고 일본에서는 수렵과 채집활동을 하던 조몬(繩文)시대의 뒤를 이어 농경과 금속도구를 사용한 야요이문화가 시작된 시기다. 한반도에 도래한 청동기 문화는 학자들에 따라 견해가 나뉜다. 한반도의 청동기 문화가 중국의 영향을 받았다는 설과 중국의 영향이 없었고 독자적으로 발전된 문화라는 설이다.
지석묘.
지석묘.
한국의 청동기 유물이 중국적인 영향권이 아니므로 재검토해야 할 여러 문제점을 안고 있다는 설을 보자. 예를 들어 한국의 돌널무덤은 그 분포가 남(南)시베리아, 만주, 한국 등지까지 넓게 퍼져 있는데, 시베리아의 돌널무덤은 기원전 15세기이며, 같은 한국의 돌널무덤에서는 이미 청동기 유물이 나오기 때문에, 한국의 청동기 문화는 오히려 기원전 15세기를 넘어 그 이전으로 올라갈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은 여러 논란이 명확하게 정리되지 않은 상태다.
과거에는 한국의 청동기 유물은 북한(北韓) 지역에만 있다는 설도 있었지만, 지금에 와서는 한반도 전역에서 청동기 유물이 출토되고 있어 논란은 정리됐다. 현재 청동기 유물의 분포를 보면, 함경북도에서부터 전라남도와 경상남도까지 광범위하게 출토되고 있다. 광복 후 한국인에 의한 고고학 연구가 활발해짐에 따라 한국에도 독자적인 청동기 문화가 존재한다는 것이 차츰 알려지게 됐고, 또한 각처에서 청동기 유물이 나타남으로써 물적 증거가 뒷받침되고 있다. 따라서 진동리 선사유적지는 앞으로 한반도 청동기 문화의 정착과 발전과정을 밝힐 수 있는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고인돌 C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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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 제472호 진동리 선사유적=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면 진동리 130번지 일원에 위치하는 창원 진동리 유적은 토지구획정리사업 과정에서 발견됐다. 발굴조사 결과 국내 최대 규모의 청동기시대 집단묘역이 확인된 유적으로 대형 지석묘와 석관묘가 집단으로 발굴됐다. 위치는 태봉천과 진동천에 의해 넓게 형성된 충적지에 자리 잡았다. 2004년 9월부터 2005년 5월까지 약 8개월에 걸쳐 경남발전연구원 역사문화센터에서 발굴 조사했고, 2006년에 사적 제472호로 지정된다.
현재 이 유적지는 공원으로 조성돼 넓은 지형에 지역민들이 운동을 하거나 가벼운 스포츠를 즐기기도 한다. 가끔은 가족 단위 혹은 단체로 관람을 오기도 하는데 공원에 산재한 지석묘나 고인돌이 유적이라기보다는 공원을 장식하는 인위적 장식물이거나 설치미술품 같은 느낌이 들어 사진을 찍는 내내 비현실적인 마음이 들었다.
석관묘.
석관묘.
이곳에서 발굴된 유물 중 청동기시대의 것으로는, 묘역식 고인돌 무리 11개, 기반식 고인돌 1기, 돌널무덤 45기, 밭, 구덩이, 돌무지(고인돌이나 돌널무덤 둘레에 보호물로 쌓아 둔 돌 더미) 등이 발굴돼 친절한 설명과 함께 나무데크로 뷰포인트까지 조성해 놓았다.
묘역식 고인돌은 A~K군으로 개별적인 무리를 형성하고 있으며, 각각의 무리들은 둥근 모양, 타원형 모양, 정사각 모양, 직사각 모양들로 이루어져 서로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다. 묘역은 가장자리에 구획돌만 돌린 것, 구획돌을 설치하고 내부에 돌을 쌓은 것, 구획돌 없이 돌을 쌓은 것으로 구분이 된다. 또 단독으로 만들어진 것도 있지만 2~3기가 모여있는 것도 있다.
발굴된 전체 모습으로 보면, 이 시기 마을은 장방형 혹은 원형의 수혈 주거지로 구성되고, 무덤은 지석묘, 적석묘, 석곽묘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벼를 비롯한 곡물 농사가 시작됐고, 무덤의 부장품들은 물론 청동기류다. 비파형동검 등의 무기와 다뉴기하학문경(다뉴세문경) 등의 의기가 있는데, 특히 다뉴기하학문경은 초기 철기시대 한반도에서 제작된 청동 거울로, 뒷면에 정교한 기하학적 무늬가 새겨진 것이 특징이다. 가느다란 선으로 삼각형과 동심원, 방사선 등 다양한 기하학적 문양이 세밀하게 장식돼 있다. 머리카락보다 가는 선으로 정교한 무늬를 새겼는데, 지름 19.6㎝에 0.2㎜의 반경으로 1만3000여 개의 선을 그려 넣었다고 한다. 이는 현대 기술로도 재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정밀한 것이다.
그래서 청동기 문화의 정점을 보여주는 유물로, 한반도 청동기 문화의 기술적·예술적 성취를 상징한다. 주로 제사용 도구, 권력자의 상징물 등으로 사용됐을 것으로 유추한다. 다만 아직은 이 유물들이 공개되지 않고 있다.
◇규모가 가장 큰 A군 대형 묘역= 규모가 가장 큰 A군에서는 고인돌 9기가 확인됐는데, 이 중 발굴 조사된 것은 A-1호이다. 이것은 직경 20.2m의 둥근꼴 묘역 시설에 도랑이 있고, 묘역의 가장자리에서 중앙으로 갈수록 높이가 높아진다. 묘역 내부는 잔자갈을 쌓은 후 그 위에 흑갈색 흙을 여러 번 쌓고 다시 그 위에 돌을 깔았다. 가장자리의 구획돌은 길이 방향으로 세워서 놓았다.
묘역 중앙에서 길이 3.2m, 너비 1.5m 규모의 지상식 무덤방이 확인됐다. 무덤방 내부에서 간돌검 1점, 간돌화살촉 3점이 출토됐고, 도랑에서 붉은간토기가 반으로 깨진 상태로 출토됐다.
기반식 고인돌은 원래 이 일대에 8기 이상이 무리 지어 분포하고 있었지만, 대부분 파괴되고 2기만 남아있으며, 그중 1기가 조사된 것이다. 덮개돌 주변에 많은 민무늬토기 조각들이 흩뿌려지듯이 출토된 점에서 의례 행위가 있었다고 추정된다. 돌널무덤은 밭과 묘역식 고인돌 사이의 공간에 분포한다. 열을 이루거나 2~5기씩의 작은 무리들로 나뉘어져 있다. 무덤방은 벽면을 널돌로 쌓은 것과 깬돌로 쌓은 것으로 각자 구분된다.
한편, 창원진동리유적의 북쪽 인근에는 1980년에 수습 조사된 무덤에서 비파형동검(琵琶形銅劍) 1점과 간돌검 1점, 간돌화살촉 2점, 붉은간토기 1점이 한꺼번에 출토돼 당시에 많은 관심을 끌기도 했다.
창원진동리유적이 자리한 곳은 진동만에서 함안 지역으로 통하는 교통로인 점에서 해안과 내륙을 잇는 지리적 요충지에 해당한다. 이러한 지리적 조건은 청동기시대에 경상남도 내륙과의 교류를 통해 이 유적이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이 됐다.
현재 묘역식 고인돌이 분포하는 곳을 중심으로 묘역식 고인돌 7개소(26기), 기반식 고인돌 1기, 선돌 2기, 쉼터 4곳과 탐방로로 이루어진 유적공원이 조성돼 있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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