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에 따라 날씨가 변화하는 일반적인 개념이 다르질링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하루에도 수십 번 바뀌는 하늘의 색은 변덕이 죽을 듯 넘쳐나고, 비구름과 안개의 잦은 출현은 이곳에서 당연한 일상이다. 구름에 가려 멋진 경치를 볼 수 없다고 탄식하던 순간, 오히려 구름이 특별한 풍경으로 그 순간을 변화시켰켰다. 인도의 대표적인 홍차 재배지로 알려진 다르질링의 변화무쌍한 일상을 살폈다.



히말라야 산맥의 급경사와 비탈진 지형을 따라 조성된 다르질링 마을 풍경



야마토게임시시각각 변화하는 천둥의 땅

여행이 ‘고행’처럼 느껴질 때는 언제나 변덕스러운 날씨가 영향을 크게 미친다. 찌는 듯한 무더위로 인해 땀에 뒤범벅된 상황이 불과 1~2시간 전이었는데, 어느새 차디찬 공기가 코끝을 스치더니 이내 몸 전체를 에워쌌다. 헉헉대며 산길을 오르는 버스 차창 밖 온도는 한 자리 수로 뚝 떨어 야마토게임 졌고, 땀으로 끈적끈적했던 온몸이 금세 새 기온에 휩싸인다.
여분의 자켓을 껴입고 나자, 차창 밖 풍경이 순식간에 얼굴을 바꾼다. 구름과 안개로 뒤덮여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풍경, 산신령이 불쑥 튀어나올 것만 같은 몽롱하고 흐릿한 분위기 너머로 저만치 산속 마을의 형태가 조금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마을 초입에 골드몽릴게임 닿았고 겨울용 외투와 머플러로 머리를 감싼 사람들의 차림새가 다르질링(Darjeeling)의 첫인상을 완성했다.



(좌로부터 시계반대방향) 일년 중 300일 이상 비구름과 안개로 뒤덮이는 다르질링의 날씨. 마을 뒤로 세계에서 세 번째로 높은 산인 칸첸중가를 조망할 수 있다. 백경릴게임 다르질링 도심의 버스터미널 모습



인도 서벵골주 최북단 지역에 위치한 도시 다르질링은 해발 2,248m의 히말라야 산속에 자리해 일년 내내 여름기후를 나타내는 일반적인 인도 지역과 다른 양상을 보인다. 위치상 서쪽으로는 네팔, 동쪽으로는 부탄 왕국, 북쪽으로는 중국의 티베트자치 오션파라다이스예시 구가 인접해 있어 문화 및 역사적으로 주변국의 영향을 밀접하게 받아온 구조적 특징을 가진다. 다르질링은 ‘천둥의 땅’이라는 뜻의 티베트어에서 유래된 지명으로, 이에 걸맞게 시시각각 변화하는 변덕스럽고 일교차가 큰 기후를 보인다.

일년 중 300일 이상 비구름과 안개로 뒤덮이는 날씨 때문에 다르질링에서 구름 한 점 없는 청명한 하늘을 보려면 소위 삼대가 덕을 쌓아야 한다. 이 사실을 숙지하고 난 뒤 다르질링 여행에서 ‘맑음’을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 어차피 실망할 게 뻔하기에.



(좌)안개로 뒤덮인 다르질링의 마을 (우)도심으로 향하는 좁은 길



독특한 기후환경과 더불어 산속 마을의 또 다른 특징은 바로 골목길의 풍경이다. 히말라야 산맥의 급경사와 비탈진 지형을 따라 이어지는 좁고 가파른 길과 도로, 그 주변에 집을 짓고 살아가는 이곳 마을 사람들의 거주환경은 오싹한 날씨만큼 강렬한 인상을 선사했다.

좁고 가파른 길을 따라 도심으로
숙소를 선택할 때 도심보다는 현지인들이 거주하는 동네를 선호하는 편이다. 도심에 자리한 호텔에 묵는다면 이동의 편의성이 보장되겠지만, 왠지 겉만 대충 살피고 여행이 끝나는 것 같은 허전함이 몰려오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매번 선호하는 대로 여행이 흘러가진 않는다. 다르질링 여행은 운이 좋았다. 로컬 동네에 자리한, 현지인이 운영하는 홈스테이에 묵을 수 있었는데, 외출을 하려면 하루에도 수십 번 가파른 계단과 길을 오르내려야 한다는 사실은 현장에 도착하고 나서야 인지했다.



(위)다르질링 주택가 풍경 (아래)도심의 기념품 상점 거리



숙소에서 도심까지의 거리는 약 2km에 불과하지만, 족히 열 번 넘게 가파른 오르막과 내리막을 번갈아 지나야 한다. 가파른 길은 오르막도 고역이지만 무릎이 직각으로 꺾이는 듯한 내리막도 오르막의 수고로움을 보상받기에 충분하지 않다. 첫날과 둘째 날까지만 해도 숙소 선택에 의구심을 떨칠 수 없었으나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 아니던가. 가파른 길과 계단에 대한 미움이 조금씩 옅어지면서 비로소 현지인의 살아가는 모습이 하나둘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과연 잘한 선택이었다.




(좌)다르질링 주택가 풍경 (우)도심에 자리한 중앙시장인 ‘초크바자’



다르질링은 시장과 상점 등이 형성된 도심을 중심으로 남쪽과 북쪽으로 좁고 구불구불한 길이 나 있고, 그 주변에 대다수의 주택가가 조성되어 있다. 주택가 동네마다 구멍가게 수준의 식료품점이 있는데, 실질적인 장보기는 도심에서 가능하다. 그러니 이곳 동네 여인네들은 장본 짐을 이고 지고 메고 도심과 집을 오간다. 자동차가 지날 수 없는 좁은 길이다 보니 오토바이를 이용하는 여인들도 간혹 볼 수 있었으나, 대다수는 몸뚱이에 의존한 채 무거운 짐을 실어 나른다.

이들의 일상은 잠시 머물다 가는 여행자의 일상과 비할 수 없는 수준이다. 여행자의 눈이 닿는 풍경마다 죄다 불편하기 짝이 없는 모습이지만 그 형태야 어찌됐든 길이 있다는 것은 ‘편리’로 통한다. 동네에서 마주친 현지인들을 통해 깨달은 이치다. 존재만으로 감사한 마음을 품을 수 있다는 것, 그를 생각하면 숙소와 도심을 오르내리는 길이 더 이상 좁지도, 가파르지도, 무엇보다 불편하지 않았다.
청포도 향이 감도는 고품질의 홍차



(좌)수확을 앞둔 초록빛 찻잎 (우)발효 및 가공과 건조를 거친 찻잎



다르질링을 여행한 적은 없지만, 이곳 지명이 익숙한 사람이라면 아마 홍차를 즐겨 마시는 부류에 속할 것이다. 다르질링에서 생산되는 홍차는 ‘홍차의 샴페인’이라고 불리며, 세계3대 홍차로 유명하다. 19세기 중반 해발고도가 높은 선선한 기후 조건을 이유로 영국인들이 이곳에 산악 휴양지를 건설하기 시작한 것이 다르질링의 재발견으로 이어진다.

당시 ‘언덕의 여왕’으로 일컬어졌던 이곳이 차 농장에 특히 적합한 기후환경을 갖추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다르질링 지역 곳곳에 차나무가 심어지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게 19세기 중반 영국은 중국 외에 대체 차 공급원을 찾고 있었던 터라 다르질링이 그 역할에 힘을 실었고, 이곳 홍차는 예나 지금이나 인도에서 가장 인기 있는 홍차라는 명성을 가진다.



다르질링을 대표하는 해피 밸리 차농장의 차밭 풍경



그 이유는 차나무 품종에 있다. ‘카멜리아 시넨시스 변종 시넨시스’라는 차나무를 사용해 재배되는 다르질링 홍차는 잎이 작고 향이 강렬한 것이 특징이다. 또한 다르질링 홍차는 독특한 청포도 향으로 유명하다. 매미충이나 총채벌레 같은 곤충이 찻잎의 수액을 빨아먹는 과정에서, 차나무가 해충 억제 효과가 있는 테르펜을 생성해 이를 막아내는데, 높은 테르펜 함량 덕분에 다르질링 차의 풍미가 청포도 향과 비슷하다고 알려져 있다.

이러한 독특한 풍미로 인해 인도에서 다르질링 차는 법적 명칭과 인증을 통해 보호를 받고 있다. 다르질링에 있는 특정 차 재배지에서 생산된 경우에만 ‘다르질링 차’라는 이름으로 판매될 수 있는 것. 이 인증 절차는 인도차위원회의 감독을 받으며, 유럽의 치즈나 와인 등의 인증 절차와 유사성을 띤다.



찻잎을 수확하고 있는 주민들의 모습



다르질링 차는 주로 홍차로 우려낸다. 일반적으로 봄과 가을 사이에 차를 수확하는데, 계절마다 차의 향과 맛이 조금씩 다르다. 3월의 수확한 차는 부드러운 보디감과 은은한 과일 향, 꽃 향이 짙은 반면, 6월에 수확한 차는 호박색을 띠고 향이 더 강한 것이 특징이다.

또한 가을에 수확한 차의 경우 크리미한 보디감과 어두운 색조, 풍부한 맛을 느낄 수 있다고 전해진다. 도심에 위치한 여러 상점에서 차를 맛보거나, 차 농장을 방문해 차 밭을 산책하거나 찻잎을 따고 있는 주민들을 만나볼 수 있다.



고품질의 다르질링 차를 판매하는 상점 모습



일출을 볼 수 없는 일출명소에서

여행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일출과 일몰을 감상하는 일이 아닐까 싶다. 바쁜 현대인의 일상에선 해가 뜨고 지는 게 별 대수롭지 않은 관심사지만, 여행은 그 일상에서 벗어난 기쁨이 도사라는 순간이기에 한번쯤 일출과 일몰을 사수할 필요가 있다. 한데 다르질링에서는 과연 원하는 대로 계획이 이뤄질지 누구도 알 수 없다. 천둥과 벼락의 땅인 이곳의 변덕스러운 날씨 때문이다. 이곳 사람들은 ‘하늘의 뜻은 오직 신만이 안다’고 말을 한다. 청명한 날씨가 아닌, 잔뜩 구름 낀 하늘이 펼쳐진다면 일출도 일몰도 결과는 ‘꽝’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르질링의 일출명소로 유명한 곳, 타이거 힐에 가기 위해 새벽부터 단장을 마쳤다. 날씨 앱이 알려준 기후정보는 온통 비구름 천지지만 만약 신께서 멀리서 온 한국인 여행자의 마음을 헤아리신다면 기적처럼 구름이 걷히고 해가 반짝 얼굴을 내밀지 않을까? 온갖 기대를 품고서 칠흑 같은 새벽길을 뚫고 택시를 잡아탔다.



주차장에서 가장 높은 언덕인 타이거 힐까지 걸어서 이동했다. 인산인해를 이룬 다르질링 일출명소인 타이거 힐



타이거 힐은 다르질링 도심에서 남동쪽으로 약 10km 떨어져 있다. 첫 햇살이 칸첸중가 산(높이 8,585m로, 네팔과 인도 국경 히말라야 주봉으로 세계에서 세 번째로 높은 산)에 닿아 황금빛을 띠는 장소로 알려져 일출명소로 인기가 높다. 칸첸중가 산이 뿜어내는 신비로운 에너지는 인도인들에게 종교적 가치와 같다.

구름이 걷혀 거대한 산의 위용을 고스란히 두 눈에 담는다면 좋겠지만 그것에 상관없이 장소 자체만으로 특별한 의미와 공기가 전해지는 곳이다. 결과적으로 기대는 현실화되지 않았다. 칸첸중가 산 전망을 볼 수 없었고, 대신 차디찬 산의 기운과 공기를 입안 가득 머금으며 눈 대신 입이 호사를 누렸다.



다르질링의 대표적인 종교적 명소인 평화탑



멋들어진 일출사진을 기록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은 숙소로 돌아가는 길, 다르질링의 대표적인 종교적 명소인 평화탑에서 달랬다. 독특한 격자 구조로 설계된 평화탑은 일본의 불교 건축과 인도의 장인정신, 보편적 평화 원칙이 잘 어우러져 융합된 곳이다. 인종과 신앙에 상관없이 전 세계인 모두가 평화를 추구하는 데 힘을 합치도록 하기 위한 목적에서 이 평화탑이 건설되었다. 마음의 평화가 탑에서 울려 퍼진 종소리를 따라 찬찬히 가슴에 박혔다.




(좌)평화탑 한 편에 위치한 좌불상과 와불상 (우)평화탑 내부 본당



한적한 마을의 울창한 숲길을 걷다

다르질링 외곽의 관광명소 가운데 타이거 힐과 더불어 인기 있는 장소가 렙차 자가트(Lepcha Jagat) 마을이다. 도심에서 남서쪽으로 약 15km 떨어져 있는 이 마을은 구름과 안개로 뒤덮인 다르질링의 날씨와 혼연일체를 이루는 곳이다. 다시 말해 맑은 날에는 이곳 방문을 자제해야 한다는 뜻이다.



(위)굼(GHUM) 기차역에서 렙차 자가트 마을로 가는 버스를 잡아탔다. (아래)렙차 자가트 마을 초입



정글 숲속에 숨어 있듯 자리한 렙차 자가트 마을은 일대가 울창한 진달래와 참나무로 무성한 숲을 이룬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이곳은 한때 히말라야 주변에 거주해온 렙차 부족의 마을이었다. 자가트는 ‘세상’을 의미하며 ‘렙차 부족의 세상’으로 인식됐던 곳이다. 현재 이 땅의 주인은 서벵골주 삼림개발공사로, 인도 정부가 보호하는 주요 삼림지역 중 하나다.

한적한 마을에서 할 수 있는 액티비티는 숲길을 걷는 일. 울창한 숲속 트레킹 코스를 따라 걸으며 히말라야 식물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는 것은 최고의 호사가 아닐 수 없다. 더욱이 구름과 안개로 뒤덮인 나무 숲은 한낮의 시간을 어두컴컴한 새벽녘으로 순식간에 바꿔버린다.



참나무로 무성한 숲을 이룬 렙차 자가트 마을



새들의 지저귐과 곤충들의 대화, 나무의 향과 공기를 듣고 마시며 걷다 보면 쓰레기로 들어찬 번잡하고 무질서했던 다르질링 도심의 기억을 빠르게 지운다.

산책의 즐거움 뒤로 깨끗한 공기가 한가득 채워진 몸과 마음에 맑게 갠 청명한 기운이 감돈다. 저 멀리 웅장하게 우뚝 솟아 있는 칸첸중가 산의 전망이 아주 또렷이 시야에 들어온 것 같은 기분, 상상 속 마음의 눈으로 그 위용을 정확히 보았다. 그리하여 다르질링 여행은 맑음.



참나무가 무성한 렙차 자가트 마을




”새들의 아름다운 지저귐과 곤충들의 대화, 나무의 향과 공기를 듣고 마시며 걷다 보면 쓰레기로 들어찬 번잡하고 무질서했던 다르질링 도심의 기억을 빠르게 지운다. 산책의 즐거움 뒤로 깨끗한 공기가 한가득 채워진 몸과 마음에 맑게 갠 청명한 기운이 감돈다. 저 멀리 웅장하게 우뚝 솟아 있는 칸첸중가 산의 전망이 아주 또렷이 시야에 들어온 것 같은 기분, 상상 속 마음의 눈으로 그 위용을 정확히 보았다. 그리하여 다르질링 여행은 맑음.”


[글과 사진 추효정(여행작가)]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1009호(25.12.16) 기사입니다] 기자 admin@reelnara.inf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