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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미술여행- 54] 덴마크 오드럽가드
북유럽 여행의 마지막 여정에서 저는 덴마크 외곽으로 좀 멀리까지 나가봤습니다. 햄릿과 바다와 숲이 함께 등장하는 즐거운 여행이었죠. 이날은 단연코 지난 여름 가장 완벽했던 하루였습니다. 그 여행을 느긋하게 풀어보겠습니다. 천천히 따라오시길.
바다에 떠 있는 듯한 크론보르성. ©김슬기
햄릿 왕자의 성을 찾아 떠난 모험
한국릴게임
크론보르성은 완벽하게 파놓은 해자에 둘러싸여 있다. 입구는 해안쪽으로 나 있어 기차역에서는 약 20여분 정도를 걸어야 한다. ©김슬기
제가 <흑백 요리사 2>에서 가장 놀랐던 장면은 요리 괴물 무료릴게임 과 손종원 셰프가 같이 요리를 하는 장면에서 5분 단위로 타임 테이블을 짜는 모습이었습니다. 보기만 해도 숨 막히는 J의 모습이었는데요.
유럽 여행 내내 바람가는데로 돌아다녔던 제가 유일하게 하루의 시간표를 시간 단위로 철저하게 짜놓고 움직인 날이 있었습니다. 덴마크 여행 일정 중에서 코펜하겐 북동부로의 여행에 쓸 수 온라인릴게임 있는 시간은 단 하루 뿐이었기 때문이었죠. 코펜하겐에서 30분 거리에 오드럽가드, 그곳에서 약 1시간 거리에 루이지애나 미술관이 위치했지만 두 미술관은 10시에 개장을 했고, 루이지애나는 야간까지 개장을 하고 있었습니다.
1분 1초가 아까웠던 저는 9시에 문을 여는 크론보르성까지 보기로 마음을 먹었죠. 기차역에서 꽤 걸어야한다는 사실을 몰 백경게임 라서 달리기도 했던 하루였습니다. 코펜하겐 중앙역에서 약 1시간 거리의 크론보르성을 아침 일찍 찾은 다음 다시 남쪽으로 내려와 오드럽가드, 다시 북쪽으로 되돌아가 루이지애나를 보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비효율적인 동선이었지만 이 루트를 선택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오르럽가드→루이지애나는 완행버스를 타고 약 50분 정도를 이동하면 기차역을 거치 릴박스 지 않고 한 번에 이동이 가능한데다, 바다를 보면서 달릴 수 있는 덴마크 최고의 이동 경로였기 때문입니다. 힘들긴했지만 해안도로를 달리며 본 경치는 왜 스카겐 화가들이 바다를 그토록 반복해 그렸는지 이해될 정도로 멋진 풍경이었습니다. 레고를 닮은 박공지붕 목조 주택, 카누와 요트를 가진 집들이 해변을 따라 쉼없이 이어졌죠. 햇살이 부서지는 바다에선 많은 이들이 해양 스포츠를 하며 찬란한 여름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마치 그림 속 한 장면 같았죠.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비극 <햄릿>의 배경이 된 성을 만나기 위해 저는 이른 아침에 헬싱괴르(Helsingør) 역에 내렸습니다. 크론보르성(Kronborg Castle)은 극 중에서는 엘시노어 성으로 불렸던 곳이죠. 16세기 말 덴마크 왕실의 궁정에서 펼쳐진 비극을 성의 직원과 배우들은 열심히 재현하고 있더군요.
크론보르성 안뜰에서는 중세시대 복장을 한 직원들이 맞아준다. ©김슬기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를 덴마크어로 우렁차게 외치며 연기하는 남자 배우를 만났을 때는 연신 셔터를 누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성은 낡고 볼거리가 많지는 않았지만 항구도시 헬싱괴르의 배들이 정박한 항구 풍경과 어우러진 바다에 떠 있는 듯한 크론보르성의 모습은 정말 멋졌습니다.
이곳에서 다시 기차와 버스를 갈아타고 오드럽가드로 남하했습니다. 잠시 숲길을 걸으니 코펜하겐 북쪽으로 약 10㎞ 떨어진 샬로텐룬드(Charlottenlund)에 위치한 오드럽가드(Ordrupgaard) 미술관에 도착했습니다. 북유럽에서 손꼽히는 인상주의 미술 컬렉션을 소장한 곳으로, 예술과 건축, 그리고 자연이 조화를 이루는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공간이었습니다.
미술관의 입구부터 자하 하디드가 만든 조형물이 존재감을 뽐내고 있었죠. 울창한 숲속에 자리 잡은 미술관은 설치 미술로 가득한 미술 공원으로 둘러싸여 있는데요. 담쟁이덩굴로 뒤덮인 구관을 보고는 입구에서부터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아니 이렇게 예쁜 미술관이 덴마크에 또 있을 수 있을까?” 꽤 섣부른 감탄이었습니다. 불과 몇시간 뒤에 그 답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곧장 루이지애나 미술관을 만나게 됐거든요.
담쟁이로 덮인 고풍스러운 저택이 미술관으로
일종의 구관 역할을 하는 신고전주의풍 저택은 온실을 통해 로비와 카페로 이어져 있다. ©김슬기
1918년 사업가 빌헬름 한센(Wilhelm Hansen)의 개인 저택과 컬렉션을 기반으로 설립된 오드럽가드 미술관은 현재 덴마크 국영 미술관입니다. 시골 마을의 두 미술관은 모두 ‘코펜하겐 카드’를 통해 입장을 할 수 있더군요. 코펜하겐 국립 미술관만큼이나 이 두 미술관이 많은 관람객을 맞는 이유인 것 같았습니다.
덴마크의 ‘보험왕’ 빌헬름 한센은 처음에는 덴마크 황금기 화가들의 작품을 수집했으나, 점차 프랑스 미술로 눈을 돌리게 됩니다. 특히 제1차 세계대전 중 파리의 미술 시장이 침체되어 명작들이 헐값에 나왔을 때, 컨소시엄을 구성해 집중적으로 인상파 작품을 사들였죠. 이 덕분에 모네, 르누아르, 세잔, 고갱 등 거장들의 작품을 북유럽으로 가져올 수 있었습니다.
1922년 덴마크를 강타한 금융 위기로 인해 한센은 파산 직전까지 몰리게 됩니다. 빚을 갚기 위해 아끼던 컬렉션의 절반을 매각해야 했고, 이때 팔려나간 많은 작품이 현재 코펜하겐의 글립토테크 미술관으로 눈물의 이사를 가게 됩니다. 두 미술관이 인상주의 컬렉션으로 이름나게된 공교로운 사연이죠. 한센은 훗날 경제적 상황이 나아지자 그는 다시 열정적으로 작품을 수집하여 지금의 컬렉션을 완성했다고 합니다.
빌헬름 한센이 1936년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후, 홀로 남은 아내 헤니 한센이 저택과 컬렉션을 지켰습니다. 그녀는 1951년 사망하면서 남편의 뜻을 이어 저택과 예술품 일체를 덴마크 국가에 기증했고, 1953년 오드룹가드는 국립 미술관으로 대중에게 문을 열게 되었죠. 결국 오드룹가드는 단순한 미술관을 넘어, 예술을 사랑했던 한 부부의 열정과 헌신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공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20세기 초의 신고전주의풍 저택에는 덴마크 미술이 전시 중이었고, 지하에 지어진 스노헤타(Snøhetta) 지하 전시관에서는 프랑스 미술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매년 다양한 특별 전시도 개최합니다. 2024년 겨울부터는 플로라 유크노비치가 이 곳에서 <숲속으로>라는 개인전을 열기도 했습니다. 그때도 덴마크를 갈까 고민을 했지만, 겨울의 북유럽을 여행 갈 마음을 먹긴 쉽지 않았습니다.
스노헤타에서 만난 모네, 르누아르, 드가, 세잔 등 인상주의 및 후기 인상주의 컬렉션은 가히 덴마크 최고 수준을 자랑하고 있었습니다. 변화하는 현대 세계를 매혹적이고 스냅숏처럼 반짝이는 그림으로 표현하고 있었습니다.
프랑스 미술 컬렉션 ©김슬기
베르트 모리조 [녹색 옷을 입은 소녀(마드모아젤 이자벨 랑베르)], 1885 ©Ordrupgaard
프랑스 컬렉션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대표작 중 하나는 베르트 모리조의 <녹색 옷을 입은 소녀>입니다. 이 그림은 모리조의 최애 모델 이자벨 랑베르의 모습을 싱그러운 녹음과 대조되는 붉은 옷을 입은 모습으로 그렸죠. 빠르고 거친 붓터치로 묘사된 풀과 나무가 소녀를 감싸고 있어, 인물과 자연이 하나가 된 듯한 느낌을 줍니다.
덴마크의 사위, 폴 고갱의 작품도 꽤 많았습니다. 이곳에 소장된 고갱의 작품 10여점에서는 인상주의 이후 그가 구했던 새로운 예술적 표현들을 보여줍니다. 덴마크의 문화와 풍경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폴 고갱의 넷째 아들 장 르네 고갱(1881~1961)의 중요한 컬렉션 중 하나도 만날 수 있습니다. 폴 고갱은 덴마크어를 쓰는 아들과 소통을 거의 하지 못했고 타히티로 떠나기 전인 아들이 열 살 시절 때 마지막 만남을 가진 뒤엔 영영 해후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장 르네 고갱은 아버지와의 기억조차 별로 남지 않았을테죠.
재미있는 사연이 있습니다. 1904년, 폴 고갱이 사망한 직후 그는 아버지의 그림 세 점을 상속받았는데, 이를 즉시 팔았는데요. 그 돈으로 그는 유럽 전역을 여행하며 미술품을 감상하고 돌아왔습니다. 이 여행은 그의 길고도 험난한 예술가의 삶의 시작을 열어주었죠. 가족을 버리고 떠난 폴 고갱은 자녀에게 예술적 재능만 물려준 건 아닌가봅니다. 한센 부부는 장 르네 고갱의 재능을 알아보고 1927년 분수 조각 <인어와 인어 남자>를 의뢰했고, 유명한 장미 정원을 상징하는 작품이 되었습니다.
장 르네 고갱 [인어와 인어 소녀], 1928 ©Ordrupgaard
1900년경 덴마크 미술을 다채롭게 소장한 저택에서는 프리츠 시베르크, 요하네스 라르센, 페터 한센, 베르타 베그만, 테오도르 필립센, 요아킴 스코브가르드와 같은 작가들의 작품을 선보입니다. 이들은 모두 거친 붓놀림, 스케치 같은 기법, 밝은 색채 사용 등 서유럽에서 유입된 새로운 예술적 흐름에 영향을 받았습니다.
역시나 이 미술관 덴마크 컬렉션의 주인공도 빌헬름 함메르쇼이였습니다. 함메르쇼이 특유의 텅 빈 거실, 등을 돌린 여인들, 기묘한 풍경, 독특한 건축적 모티프, 창문을 통해 쏟아지는 빛과 무채색의 실내를 보면서 이제는 한 눈에도 이 작가를 구분할 수 있게 됐다는 뿌듯함도 들더군요.
그에 못지않게 많은 작품을 소장한 작가로 라우리츠 안데르센 링(Laurits Andersen Ring, 1854~1933)이 있습니다. 헤니 한센의 컬렉션의 시작은 함메르쇼이와 링이었습니다. 두 작가의 작품이 컬렉션의 중심인 이유입니다. 20세기 초 덴마크의 사실주의 대표작가인 링은 시골 풍경을 세밀하게 묘사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마을 아이들에게 연주하는 오르간 연주자>는 한 세기 전 동화 속 삽화를 보는 것처럼 친근하게 가난한 덴마크 시골의 일상을 그려내고 있었습니다.
라우리츠 안데르센 링 [마을 아이들에게 연주하는 오르간 연주자], 1904 ©김슬기
정원에는 아이들의 천국이 기다리고 있었다
올라퍼 엘리아슨 [날씨] ©김슬기
녹음에 파묻혀 있는 오드럽가드 미술관은 주변을 산책할 때 가장 빛나는 공간이었습니다. 미술 공원(Art Park)이 하이라이트였거든요. 오드럽가드를 반드시 맑은 날씨에 가야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마침 이날은 정말로 눈부시게 화창한 날이었고, 아이들의 뛰노는 숲속 미술관의 평화로운 풍경은 지금도 눈을 감으면 그려질 정도로 인상적이었습니다.
공원에서는 20여점의 세계적인 현대 미술가들의 작품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숲속으로 깊숙이 들어가야 찾을 수 있는 작품도 있었고요. 숨바꼭질을 하듯 찾아낸 나무 위의 작품은 토마스 사라세노의 <오메가 센타우리 3.9>였습니다.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더그&마이크 스타른의 <순수의 기하학>이었는데요. 나무로 만들어진 탑에 오르는 입구에는 ‘성인 출입 금지’가 적혀 있습니다.
올라퍼 엘리아슨의 <날씨>는 거대한 원형 구조물에서 일정한 시간 간격으로 증기가 뿜어져 나왔습니다. 아이들이 구조물을 통과하며 환호하는 모습이 천진난만하게 보였습니다. 클라라 크리스탈로바의 <대홍수 이후>는 인형의 집처럼 보이는 작품이었고, 카르스텐 횔러의 <자이언트 트리플 버섯>는 포토제닉하더군요. 이 드넓은 야외 공간은 앞으로도 확장되며 미술관은 변해가겠지요. 골치아픈 현대 미술관 중에 이 곳만큼 아이들의 천국이 또 있을까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핀 율 하우스의 아름다운 인테리어 ©김슬기
마지막으로 먼 길을 찾아온 손님들은 핀 율 하우스(Finn Juhl‘s House)도 놓치면 아쉬울 겁니다. 덴마크를 대표하는 가구 디자이너 핀 율이 직접 설계하고 가구를 배치한 집이 미술관 옆에 보존되어 있어, 덴마크 모더니즘 디자인의 정수를 볼 수 있거든요. 매시간 정해진 인원만 입장할 수 있어 사전 예약이 꼭 필요합니다.
가구 디자이너이자 건축가인 핀 율은 서른 살에 자신의 집을 설계하고 꾸몄습니다. 1942년에 완공된 핀 율의 집은 현재 덴마크에서 가장 유명한 기능주의 양식의 단독 주택으로 손꼽힙니다. 핀 율이 세심하게 고른 회화 작품도 걸려 있는 집은 말 그대로 예술작품처럼 느껴졌습니다.
제가 1년 동안 쉬지 않고 배달해온 ‘슬기로운 미술여행’이 ‘오늘도 미술관에 다녀왔습니다’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간됐습니다. 종이책으로 지난 이야기들을 읽어보고 싶은 분들은 꼭 만나보시길! 유럽 최고 미술관들의 이모저모를 속속들이 담았으니, 아마도 유럽 여행을 앞둔 분들에게는 최고의 선물이 될 수 있을 겁니다.
오늘도 미술관에 다녀왔습니다
북유럽 여행의 마지막 여정에서 저는 덴마크 외곽으로 좀 멀리까지 나가봤습니다. 햄릿과 바다와 숲이 함께 등장하는 즐거운 여행이었죠. 이날은 단연코 지난 여름 가장 완벽했던 하루였습니다. 그 여행을 느긋하게 풀어보겠습니다. 천천히 따라오시길.
바다에 떠 있는 듯한 크론보르성. ©김슬기
햄릿 왕자의 성을 찾아 떠난 모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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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론보르성은 완벽하게 파놓은 해자에 둘러싸여 있다. 입구는 해안쪽으로 나 있어 기차역에서는 약 20여분 정도를 걸어야 한다. ©김슬기
제가 <흑백 요리사 2>에서 가장 놀랐던 장면은 요리 괴물 무료릴게임 과 손종원 셰프가 같이 요리를 하는 장면에서 5분 단위로 타임 테이블을 짜는 모습이었습니다. 보기만 해도 숨 막히는 J의 모습이었는데요.
유럽 여행 내내 바람가는데로 돌아다녔던 제가 유일하게 하루의 시간표를 시간 단위로 철저하게 짜놓고 움직인 날이 있었습니다. 덴마크 여행 일정 중에서 코펜하겐 북동부로의 여행에 쓸 수 온라인릴게임 있는 시간은 단 하루 뿐이었기 때문이었죠. 코펜하겐에서 30분 거리에 오드럽가드, 그곳에서 약 1시간 거리에 루이지애나 미술관이 위치했지만 두 미술관은 10시에 개장을 했고, 루이지애나는 야간까지 개장을 하고 있었습니다.
1분 1초가 아까웠던 저는 9시에 문을 여는 크론보르성까지 보기로 마음을 먹었죠. 기차역에서 꽤 걸어야한다는 사실을 몰 백경게임 라서 달리기도 했던 하루였습니다. 코펜하겐 중앙역에서 약 1시간 거리의 크론보르성을 아침 일찍 찾은 다음 다시 남쪽으로 내려와 오드럽가드, 다시 북쪽으로 되돌아가 루이지애나를 보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비효율적인 동선이었지만 이 루트를 선택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오르럽가드→루이지애나는 완행버스를 타고 약 50분 정도를 이동하면 기차역을 거치 릴박스 지 않고 한 번에 이동이 가능한데다, 바다를 보면서 달릴 수 있는 덴마크 최고의 이동 경로였기 때문입니다. 힘들긴했지만 해안도로를 달리며 본 경치는 왜 스카겐 화가들이 바다를 그토록 반복해 그렸는지 이해될 정도로 멋진 풍경이었습니다. 레고를 닮은 박공지붕 목조 주택, 카누와 요트를 가진 집들이 해변을 따라 쉼없이 이어졌죠. 햇살이 부서지는 바다에선 많은 이들이 해양 스포츠를 하며 찬란한 여름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마치 그림 속 한 장면 같았죠.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비극 <햄릿>의 배경이 된 성을 만나기 위해 저는 이른 아침에 헬싱괴르(Helsingør) 역에 내렸습니다. 크론보르성(Kronborg Castle)은 극 중에서는 엘시노어 성으로 불렸던 곳이죠. 16세기 말 덴마크 왕실의 궁정에서 펼쳐진 비극을 성의 직원과 배우들은 열심히 재현하고 있더군요.
크론보르성 안뜰에서는 중세시대 복장을 한 직원들이 맞아준다. ©김슬기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를 덴마크어로 우렁차게 외치며 연기하는 남자 배우를 만났을 때는 연신 셔터를 누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성은 낡고 볼거리가 많지는 않았지만 항구도시 헬싱괴르의 배들이 정박한 항구 풍경과 어우러진 바다에 떠 있는 듯한 크론보르성의 모습은 정말 멋졌습니다.
이곳에서 다시 기차와 버스를 갈아타고 오드럽가드로 남하했습니다. 잠시 숲길을 걸으니 코펜하겐 북쪽으로 약 10㎞ 떨어진 샬로텐룬드(Charlottenlund)에 위치한 오드럽가드(Ordrupgaard) 미술관에 도착했습니다. 북유럽에서 손꼽히는 인상주의 미술 컬렉션을 소장한 곳으로, 예술과 건축, 그리고 자연이 조화를 이루는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공간이었습니다.
미술관의 입구부터 자하 하디드가 만든 조형물이 존재감을 뽐내고 있었죠. 울창한 숲속에 자리 잡은 미술관은 설치 미술로 가득한 미술 공원으로 둘러싸여 있는데요. 담쟁이덩굴로 뒤덮인 구관을 보고는 입구에서부터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아니 이렇게 예쁜 미술관이 덴마크에 또 있을 수 있을까?” 꽤 섣부른 감탄이었습니다. 불과 몇시간 뒤에 그 답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곧장 루이지애나 미술관을 만나게 됐거든요.
담쟁이로 덮인 고풍스러운 저택이 미술관으로
일종의 구관 역할을 하는 신고전주의풍 저택은 온실을 통해 로비와 카페로 이어져 있다. ©김슬기
1918년 사업가 빌헬름 한센(Wilhelm Hansen)의 개인 저택과 컬렉션을 기반으로 설립된 오드럽가드 미술관은 현재 덴마크 국영 미술관입니다. 시골 마을의 두 미술관은 모두 ‘코펜하겐 카드’를 통해 입장을 할 수 있더군요. 코펜하겐 국립 미술관만큼이나 이 두 미술관이 많은 관람객을 맞는 이유인 것 같았습니다.
덴마크의 ‘보험왕’ 빌헬름 한센은 처음에는 덴마크 황금기 화가들의 작품을 수집했으나, 점차 프랑스 미술로 눈을 돌리게 됩니다. 특히 제1차 세계대전 중 파리의 미술 시장이 침체되어 명작들이 헐값에 나왔을 때, 컨소시엄을 구성해 집중적으로 인상파 작품을 사들였죠. 이 덕분에 모네, 르누아르, 세잔, 고갱 등 거장들의 작품을 북유럽으로 가져올 수 있었습니다.
1922년 덴마크를 강타한 금융 위기로 인해 한센은 파산 직전까지 몰리게 됩니다. 빚을 갚기 위해 아끼던 컬렉션의 절반을 매각해야 했고, 이때 팔려나간 많은 작품이 현재 코펜하겐의 글립토테크 미술관으로 눈물의 이사를 가게 됩니다. 두 미술관이 인상주의 컬렉션으로 이름나게된 공교로운 사연이죠. 한센은 훗날 경제적 상황이 나아지자 그는 다시 열정적으로 작품을 수집하여 지금의 컬렉션을 완성했다고 합니다.
빌헬름 한센이 1936년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후, 홀로 남은 아내 헤니 한센이 저택과 컬렉션을 지켰습니다. 그녀는 1951년 사망하면서 남편의 뜻을 이어 저택과 예술품 일체를 덴마크 국가에 기증했고, 1953년 오드룹가드는 국립 미술관으로 대중에게 문을 열게 되었죠. 결국 오드룹가드는 단순한 미술관을 넘어, 예술을 사랑했던 한 부부의 열정과 헌신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공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20세기 초의 신고전주의풍 저택에는 덴마크 미술이 전시 중이었고, 지하에 지어진 스노헤타(Snøhetta) 지하 전시관에서는 프랑스 미술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매년 다양한 특별 전시도 개최합니다. 2024년 겨울부터는 플로라 유크노비치가 이 곳에서 <숲속으로>라는 개인전을 열기도 했습니다. 그때도 덴마크를 갈까 고민을 했지만, 겨울의 북유럽을 여행 갈 마음을 먹긴 쉽지 않았습니다.
스노헤타에서 만난 모네, 르누아르, 드가, 세잔 등 인상주의 및 후기 인상주의 컬렉션은 가히 덴마크 최고 수준을 자랑하고 있었습니다. 변화하는 현대 세계를 매혹적이고 스냅숏처럼 반짝이는 그림으로 표현하고 있었습니다.
프랑스 미술 컬렉션 ©김슬기
베르트 모리조 [녹색 옷을 입은 소녀(마드모아젤 이자벨 랑베르)], 1885 ©Ordrupgaard
프랑스 컬렉션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대표작 중 하나는 베르트 모리조의 <녹색 옷을 입은 소녀>입니다. 이 그림은 모리조의 최애 모델 이자벨 랑베르의 모습을 싱그러운 녹음과 대조되는 붉은 옷을 입은 모습으로 그렸죠. 빠르고 거친 붓터치로 묘사된 풀과 나무가 소녀를 감싸고 있어, 인물과 자연이 하나가 된 듯한 느낌을 줍니다.
덴마크의 사위, 폴 고갱의 작품도 꽤 많았습니다. 이곳에 소장된 고갱의 작품 10여점에서는 인상주의 이후 그가 구했던 새로운 예술적 표현들을 보여줍니다. 덴마크의 문화와 풍경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폴 고갱의 넷째 아들 장 르네 고갱(1881~1961)의 중요한 컬렉션 중 하나도 만날 수 있습니다. 폴 고갱은 덴마크어를 쓰는 아들과 소통을 거의 하지 못했고 타히티로 떠나기 전인 아들이 열 살 시절 때 마지막 만남을 가진 뒤엔 영영 해후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장 르네 고갱은 아버지와의 기억조차 별로 남지 않았을테죠.
재미있는 사연이 있습니다. 1904년, 폴 고갱이 사망한 직후 그는 아버지의 그림 세 점을 상속받았는데, 이를 즉시 팔았는데요. 그 돈으로 그는 유럽 전역을 여행하며 미술품을 감상하고 돌아왔습니다. 이 여행은 그의 길고도 험난한 예술가의 삶의 시작을 열어주었죠. 가족을 버리고 떠난 폴 고갱은 자녀에게 예술적 재능만 물려준 건 아닌가봅니다. 한센 부부는 장 르네 고갱의 재능을 알아보고 1927년 분수 조각 <인어와 인어 남자>를 의뢰했고, 유명한 장미 정원을 상징하는 작품이 되었습니다.
장 르네 고갱 [인어와 인어 소녀], 1928 ©Ordrupgaard
1900년경 덴마크 미술을 다채롭게 소장한 저택에서는 프리츠 시베르크, 요하네스 라르센, 페터 한센, 베르타 베그만, 테오도르 필립센, 요아킴 스코브가르드와 같은 작가들의 작품을 선보입니다. 이들은 모두 거친 붓놀림, 스케치 같은 기법, 밝은 색채 사용 등 서유럽에서 유입된 새로운 예술적 흐름에 영향을 받았습니다.
역시나 이 미술관 덴마크 컬렉션의 주인공도 빌헬름 함메르쇼이였습니다. 함메르쇼이 특유의 텅 빈 거실, 등을 돌린 여인들, 기묘한 풍경, 독특한 건축적 모티프, 창문을 통해 쏟아지는 빛과 무채색의 실내를 보면서 이제는 한 눈에도 이 작가를 구분할 수 있게 됐다는 뿌듯함도 들더군요.
그에 못지않게 많은 작품을 소장한 작가로 라우리츠 안데르센 링(Laurits Andersen Ring, 1854~1933)이 있습니다. 헤니 한센의 컬렉션의 시작은 함메르쇼이와 링이었습니다. 두 작가의 작품이 컬렉션의 중심인 이유입니다. 20세기 초 덴마크의 사실주의 대표작가인 링은 시골 풍경을 세밀하게 묘사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마을 아이들에게 연주하는 오르간 연주자>는 한 세기 전 동화 속 삽화를 보는 것처럼 친근하게 가난한 덴마크 시골의 일상을 그려내고 있었습니다.
라우리츠 안데르센 링 [마을 아이들에게 연주하는 오르간 연주자], 1904 ©김슬기
정원에는 아이들의 천국이 기다리고 있었다
올라퍼 엘리아슨 [날씨] ©김슬기
녹음에 파묻혀 있는 오드럽가드 미술관은 주변을 산책할 때 가장 빛나는 공간이었습니다. 미술 공원(Art Park)이 하이라이트였거든요. 오드럽가드를 반드시 맑은 날씨에 가야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마침 이날은 정말로 눈부시게 화창한 날이었고, 아이들의 뛰노는 숲속 미술관의 평화로운 풍경은 지금도 눈을 감으면 그려질 정도로 인상적이었습니다.
공원에서는 20여점의 세계적인 현대 미술가들의 작품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숲속으로 깊숙이 들어가야 찾을 수 있는 작품도 있었고요. 숨바꼭질을 하듯 찾아낸 나무 위의 작품은 토마스 사라세노의 <오메가 센타우리 3.9>였습니다.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더그&마이크 스타른의 <순수의 기하학>이었는데요. 나무로 만들어진 탑에 오르는 입구에는 ‘성인 출입 금지’가 적혀 있습니다.
올라퍼 엘리아슨의 <날씨>는 거대한 원형 구조물에서 일정한 시간 간격으로 증기가 뿜어져 나왔습니다. 아이들이 구조물을 통과하며 환호하는 모습이 천진난만하게 보였습니다. 클라라 크리스탈로바의 <대홍수 이후>는 인형의 집처럼 보이는 작품이었고, 카르스텐 횔러의 <자이언트 트리플 버섯>는 포토제닉하더군요. 이 드넓은 야외 공간은 앞으로도 확장되며 미술관은 변해가겠지요. 골치아픈 현대 미술관 중에 이 곳만큼 아이들의 천국이 또 있을까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핀 율 하우스의 아름다운 인테리어 ©김슬기
마지막으로 먼 길을 찾아온 손님들은 핀 율 하우스(Finn Juhl‘s House)도 놓치면 아쉬울 겁니다. 덴마크를 대표하는 가구 디자이너 핀 율이 직접 설계하고 가구를 배치한 집이 미술관 옆에 보존되어 있어, 덴마크 모더니즘 디자인의 정수를 볼 수 있거든요. 매시간 정해진 인원만 입장할 수 있어 사전 예약이 꼭 필요합니다.
가구 디자이너이자 건축가인 핀 율은 서른 살에 자신의 집을 설계하고 꾸몄습니다. 1942년에 완공된 핀 율의 집은 현재 덴마크에서 가장 유명한 기능주의 양식의 단독 주택으로 손꼽힙니다. 핀 율이 세심하게 고른 회화 작품도 걸려 있는 집은 말 그대로 예술작품처럼 느껴졌습니다.
제가 1년 동안 쉬지 않고 배달해온 ‘슬기로운 미술여행’이 ‘오늘도 미술관에 다녀왔습니다’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간됐습니다. 종이책으로 지난 이야기들을 읽어보고 싶은 분들은 꼭 만나보시길! 유럽 최고 미술관들의 이모저모를 속속들이 담았으니, 아마도 유럽 여행을 앞둔 분들에게는 최고의 선물이 될 수 있을 겁니다.
오늘도 미술관에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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