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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아침, 다정하고 친근하게 한국 정치 이면의 이야기를 풀어드립니다. 갈등과 분노가 아닌 위로와 희망을 찾을 수 있길 바랍니다.




국민의힘 장동혁 신임 당대표가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 도서관에서 열린 제6차 전당대회 결선에서 당기를 흔들고 있다. 고영권 기자


'한' 번도 가보지 않았지만 함께 가면 길이 됩니다.
'동'료시민과 함께 선민후사의 정신으로 나아갑시다.
'훈'풍을 타고 총선 승리를 향해 앞으로 나아갑시다.
지난해 1월 1일, 제22대 총선을 불과 4개월여오리자날 양귀비
앞두고 열린 국민의힘 신년 인사회에서 장동혁 당시 사무총장은 이런 건배사를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비상대책위원장이던 한동훈 전 대표의 이름으로 3행시를 지은 건데요, 듣기에 따라 다소 낯 뜨거운 '한비어천가'로 당내에서 "너무 빨리 친한동훈(친한)계로 갈아탄 것 아니냐"는 뒷말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그로부터 1년 8개월 남짓 지난 지금,신양 주식
일개 초선 의원에서 한동훈 비대위의 사무총장으로 급부상했던 장동혁 의원은 어느덧 제1야당을 이끄는 수장으로 우뚝 섰습니다. 그것도 한 전 대표로 상징되는 탄핵 찬성(찬탄)파와 대척점에 서 있는 탄핵 반대(반탄)파의 대표 주자로 탈바꿈하면서 말이죠. 국회에 첫 입성한 뒤 불과 4년도 채 되지 않는 기간 동안, 극과 극의 정치적 지향점을 내달리며 초고속 성장오늘상한가
을 한 셈입니다. 0.5선 일개 의원에서 친한계 핵심 사무총장으로, 180도 입장을 바꿔 반탄 선봉 주자로 표변했다가 당대표까지 꿰차며 정치적 체급을 키워온 장 대표의 무한 변신의 장면들을 톺아보겠습니다.

민주당 출마 원하던 판사 출신 정치 지망생… 2020 총선서 '대패'
잘 알려졌듯이, 장 대표는 황금성릴게임
판사 출신입니다. 2016년 무렵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파견 판사로 근무한 이력이 있습니다. 당시 기자들과도 친분 관계가 두터웠는데, 그때만 해도 더불어민주당으로 출마하고 싶어 했단 전언이 많습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당시라, 민주당 주도의 최순실 재산몰수 특별법을 검토한 전력도 있습니다. 장 대표의 판사 이력 중 눈에 띄는 건 광주지법 부장판사 시절 신천지인터넷게임
맡았던 전두환씨 사자명예훼손 재판입니다. 전씨가 광주에 와서 재판받는지 여부가 국민적 관심사로 떠올랐는데, 불출석을 허가했죠. 이후 2020년 총선 출마를 위해 돌연 사직서를 제출합니다. 이를 두고 보수 정당에서 공천을 받기 위해 전씨의 불출석을 봐준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왔습니다.



조승래 더불어민주당 의원 페이스북


장 대표는 당시 대전 유성갑에 미래통합당 후보로 출사표를 던졌지만, 조승래 민주당 의원에게 16.18%포인트란 큰 차이로 패배합니다. 황교안 대표의 지휘 아래 있던 통합당이 극우 논란에서 벗어나지 못한 데다, 코로나19 확산이라는 불운까지 겹쳤죠. 당시만 해도 지금의 '강경한 모습'은 없었던 거 같습니다. 상대였던 조 의원은 장 대표를 "무명의 정치인이지만, 예의 바르고 합리적이며 상대 후보의 의견을 경청하는 균형 잡히고 중도적인 사람이었다"고 평가했습니다. 어쩌면 '중도적'으로 치렀던 첫 선거의 대패가 장 대표의 교훈으로 남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대통령과 국회 입성 동기… 야당 대표로 만나다
장 대표가 국회에 입성한 건 2022년 6월 보궐선거 때입니다. 김태흠 충남지사의 지방선거 출마로 공석이 된 충남 보령·서천에 국민의힘 공천을 받아 2.03%포인트 차이로 이깁니다. 2022년 대선 윤석열 전 대통령 승리 직후였던 점을 고려한다면 꽤나 힘겹게 이긴 셈입니다. 당시 보선으로 국회에 들어왔던 입원(入院) 동기들, 상당히 쟁쟁합니다. 대표적으로 당시 인천 계양을에서 당선된 이재명 대통령을 들 수 있겠네요. 대선 주자급인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경기 성남분당갑)과 명태균 게이트로 논란이 됐던 김영선 전 의원(경남 창원의창) 등도 있습니다. 이 대통령과 장 대표는 당시 선수(選數)까지 같았는데, 3년이 좀 지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로 만나게 된 셈입니다.



2022년 7월 4일 국회에서 열린 제398회 임시회 본회의에서 6·1국회의원 보궐선거와 비례대표직 승계로 국회에 입성한 의원들이 선서를 하고 있다. 장동혁(맨 오른쪽) 국민의힘 대표 옆에 이재명 대통령이 서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국회에 들어온 장 대표는 쓰임이 많았습니다. 깔끔한 외모에 수려한 언변, 특유의 친화력, 주호영·윤재옥 등 전임 원내대표들 모두 장 대표를 중용했습니다. 기자들도 민감한 정무적 주제를 허심탄회하게 풀어주는 장 대표를 좋아했습니다. 물론 장 대표는 당시에도 체제 순응적이었습니다. 2023년 전당대회 선관위원을 맡은 상황에서 나경원 의원의 전당대회 출마를 막았던 '연판장'에 서명해 중립성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으니까요. 장 대표는 당시 선출직인 국회의원들과 날 선 공방을 벌이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갖고 있지 않았다고 합니다. 의회에 대한 존중이 부족하다는 거였죠.

한동훈號 사무총장 발탁… '친한계' 핵심으로 급부상
지난해 12월 총선을 앞두고 장 대표는 큰 변신을 합니다.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사무총장으로 낙점하자, 일약 친한계 핵심으로 부상한 겁니다. 앞서 언급한 다소 낯 뜨거운 3행시도 그때 나왔습니다. 장 대표는 특히 공천 작업을 놓고 용산 대통령실 의중을 관철하려는 시도에 여러 차례 맞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과정에서 '윤핵관' 이철규 의원과 고성이 여러 차례 오갔다는 전언도 전해집니다. 다만 총선 결과는 참패. 한 전 비대위원장이 물러나면서 함께 사퇴합니다.



한동훈(오른쪽)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해 8월 2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장동혁 의원실 주최 ‘형법 제98조 개정 입법토론회 - 간첩죄 처벌 강화’ 토론회에서 박수를 치고 있다. 고영권 기자


한 전 대표와의 정치적 여정은 이어졌습니다. 같은 해 7월 치러진 전대 때 한 전 대표의 러닝메이트 격으로 최고위원 후보로 나선 겁니다. 한 전 대표가 자신의 '소울메이트'라고 장 대표를 소개하기도 했죠. 한동훈 바람이 불었을 때라 20.61%로 넉넉하게 수석 최고위원의 영예를 안게 됩니다.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반대… 한동훈과 갈라서다
장 대표가 한 전 대표와 갈라서게 된 계기는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입니다. 지난해 12월 3일 불법 계엄이 선포됐을 때 한 전 대표와 함께 국회 본회의장에 들어가 비상계엄 해제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 18명 중 한 명이지만, 윤 전 대통령 탄핵에 대해선 입장이 달랐습니다. 국민의힘에서 8명이 이탈하면 탄핵이 가결되는 상황인데, 장 대표는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습니다. 탄핵 이후 치러질 대선은 필패가 뻔하다는 이유였습니다. 이 무렵 장 대표가 한 전 대표와 갈라설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탄핵이 가결될 경우, 장 대표도 최고위원에서 물러나 한동훈 지도부가 와해될 수 있다는 겁니다.



2024년 12월 11일 장동혁 국민의힘 의원이 국회 국민의힘 당대표실을 나서고 있다. 뒤쪽은 한동훈 전 대표. 연합뉴스


탄핵을 사흘 앞둔 지난해 12월 11일 당대표실에서 나오는 장 대표의 사진은 자못 상징적입니다. 입을 굳게 다문 장 대표와 웃으면서 배웅하는 한 전 대표의 모습이 담겨 있는데, 그로부터 사흘 뒤 윤 전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되자 장 대표는 최고위원에서 물러납니다. 탄핵과 함께 한동훈 지도부도 붕괴된 겁니다. 친윤계의 압력이 아닌, 친한계 내부의 결속이 깨진 거라, 한 전 대표 리더십에 타격이 불가피했습니다. 2023년 12월부터 1년여간 이어져 온 한 전 대표와의 동거가 끝나는 순간이었습니다.

합리적 중도 정치인이 근본주의 기독교 정치인으로
장 대표는 탄핵 가결 이후 윤 전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에 나갑니다. 그중에서도 기독교 단체가 주관하는 세이브코리아에서 거침없는 발언을 내놓습니다. "이번 계엄에도 하느님의 계획이 있다. 하느님께서 대한민국을 고쳐 주실 것", "하느님께서 반드시 이 전쟁(탄핵 정국)을 승리로 이끌어 주실 것"이라며 종교색 짙은 극우 발언을 시작합니다. 합리적인 중도 정치인은 사라진 채 근본주의 기독교 우파 세계관을 장착한 정치인으로 바뀐 겁니다.



3월 22일 강원도청 앞에서 개신교 단체 '세이브코리아'가 주최한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에서 장동혁 국민의힘 의원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헌법재판소에서 만장일치로 탄핵이 가결된 뒤에도 입장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뒤이어 열린 대선 경선에선 "목놓아 부르짖던 그 절박함으로 다시 시작하겠다"며 반탄 입장이 가장 선명했던 김문수 캠프에 합류했습니다. 총괄선대본부장이란 요직도 맡았죠. 한덕수 전 국무총리와의 단일화를 염두에 둔 것이란 지적이 있었지만, 이후 김문수 전 장관이 '버티기'에 들어갔을 때에도 김 전 장관의 편에 섰습니다. 김문수 캠프에 합류했던 대다수 현역 의원이 단일화에 미온적인 김 전 장관을 비판했던 것과 대조적이었죠.

한동훈 비토 발판… 대선후보 김문수 넘어서다
대선 참패 이후 상황은 아시는 바와 같습니다. 전당대회가 열렸고 출마했습니다. 당론을 어긴 찬탄파에 대한 선명한 비판으로 당원들의 지지를 한 몸에 받았습니다. 결선에서 대선 후보로 보필했던 김 전 장관과 대결이 성사됐는데, 승부를 가른 이슈는 한 전 대표와의 관계 설정이었습니다. '통합'을 언급한 김 전 장관과 달리 당원들의 비토 정서를 적극 자극해 강성 당원을 결집시켰습니다. "최악을 피하게 해달라"는 한 전 대표의 호소는 외려 장 대표 승리의 원동력이 됐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전한길씨와의 밀월 관계도 도움이 됐죠.



장동혁(왼쪽) 국민의힘 신임 당대표가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국민의힘 제6차 전당대회 결선에서 선출된 뒤 경쟁했던 김문수 후보의 축하 인사를 받고 있다. 김 후보가 승복 연설을 하기 위해 돌아서고 있다. 고영권 기자


흔히, 야당의 대표는 자연스레 대선 주자가 된다고 합니다. 짧은 시간 안에 정치적 성장을 이뤄낸 장 대표의 정치적 꿈도, 야당 대표에서 멈추진 않을 겁니다. 생각해 볼 지점이 있습니다. 이번 전당대회, 장 대표의 여론조사 지지율은 39.82%에 불과했습니다. 상대인 김 전 장관은 60.18%였죠. 국민의힘 지지층과 무당층을 대상으로 했는데도 큰 패배를 한 겁니다. 전 국민이 대상인 전국 단위 선거에서 반탄, 극우 노선으로 승리할 수 있을까요? 결과는 비교적 자명해 보입니다.
김도형 기자 namu@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