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12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회의실에서 한겨레21 손바닥문학상 심사위원들이 수상작 선정을 위해 토론하고 있다. (왼쪽 둘째부터 서윤빈·성해나 소설가, 은유 작가.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제17회 손바닥문학상에는 글 283편이 도착했습니다. 2024년보다 100여 편 많은 작품이 손바닥문학상 전자우편함을 채웠습니다. ‘피로사회’를 살아가는 노동자 K, “김밥 속 단무지처럼 천천히 삭아가는” 아이돌 연습생 K, 외교관 K를 통해 드러나는 한국 문화외교와 대외원조의 이중성 등 각각의 작품은 케이(K)라는 바다이야기예시 주제어를 다양한 방식으로 관통해 ‘오늘, 여기, 사람’을 조명했습니다.
2025년 12월12일 서윤빈·성해나 소설가, 은유 작가가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최종심에 오른 21편 가운데 당선작으로 선정한 세 작품은 김영희의 ‘숨은 글자들’(대상), 조혜림의 ‘클럽 273의 드랙퀸 김동‘수’’(우수상), 유미연의 ‘기호수 K’(우 백경게임 수상)입니다. 지면 사정상 이번호에 대상과 우수상 1편, 다음호에 우수상 1편을 싣습니다.
은유 작가는 “손바닥문학상을 심사하는 시간 동안 익명의 노동하는 존재들이 이야기의 중심에서 인물로 그려져 오래 인물을 곱씹을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성해나 소설가의 말처럼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책상에서, 카페에서, 식탁에서 고투하며 쓰고 있는 황금성오락실 당신은 이미 작가”입니다. 서윤빈 소설가는 “이번 심사에서 호명드리지 못한 작가님들 역시 언젠가 문학으로 만나게 되리라고 믿는다”고 응원을 보냈습니다.
진행·정리 박수진 기자
K에 투사된 아픔들… ‘목소리’ 고유한 작품들이 수상작에



서윤 야마토게임연타 빈 소설가


제17회 손바닥문학상에는 예년에 비해 많은 작품이 들어왔다. 양적 증가와 더불어 완성도 역시 2024년보다 상향 평준화돼 즐거우면서도 곤혹스러운 마음으로 심사했다.
본심에 오른 작품 스물한 편에서 가장 두드러진 경향은 한국 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이었다. 이번 손바닥문 릴게임오션파라다이스 학상의 주제어는 분명 K였으나 그것이 꼭 한국의 K여야 한다는 제약은 없었는데도 그런 원고들 위주로 모여든 것을 보면, 무엇보다 한국 사회가 문제적이라고 느끼는 분이 많은 듯했다. K는 때로 왜소한 존재의 이름으로, 때로는 정상성과 성공의 상징으로, 때로는 강도 높은 노동구조로 호명됐다. 여성·노동·소수자 등에서 우리 사회가 오래 앓고 있는 병폐를 K라는 열쇳말로 조망하는 진지한 작품들을 읽으면서 마음이 무거워지지 않을 수 없었다.
다만 많은 소설이 한국 사회의 문제를 드러내는 데 그쳤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문제의 이면까지 집요하게 탐구하는 작품 혹은 새로운 형식과 언어를 요청하는 실험적인 작품은 드물었다. 그러다보니 완결성에도 불구하고 엇비슷하게 느껴지는 작품이 더러 있었다. 소설은 작가 고유의 목소리를 필요로 한다. 좋은 문장과 문학적 형상화에 대한 고민도 중요하다. 이번 심사에서 경쟁력을 보여준 수상작들은 그런 측면에서 훌륭한 에너지를 갖추고 있었다.
대상작 ‘숨은 글자들’에는 해녀의 삶을 깊이 들여다보는 힘이 있었다. 소설을 채우고 있는 디테일들은 이 글이 허투루 쓰이지 않았다는 신뢰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우수상 ‘클럽 273의 드랙퀸 김동‘수’’는 특수청소부이자 드랙퀸이라는 이중의 소수자성을 지닌 인물을 솔직하고 또 강렬하게 그려낸 점이 좋았다. 우수상 ‘기호수 K’는 바틀비적 인물을 한국 노동환경에 맞춰 절묘하게 뒤틀어놓아 높은 평가를 받았다.
멋진 작품을 보내주신 모든 분께 감사한다. 이번 심사에서 호명드리지 못한 작가님들 역시 언젠가 문학으로 만나게 되리라고 믿는다.
서윤빈 소설가
자신만의 시선으로 세계 안팎을 살피려 한 작품에 이끌려



성해나 소설가


사회를 향해 예리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을 기대하며 본심에 오른 스물한 편의 소설을 읽었습니다. 그러한 기대에 닿는 작품이 많았던지라 심사보다는 탐독하는 기분으로 즐겁게 작품을 읽어나갔던 것 같습니다.
응모작들의 큰 줄기를 분류해보면 손바닥문학상의 취지에 걸맞게 노동과 인권에 대한 글이 압도적으로 많았고 이주민, 돌봄, 환경, 인공지능(AI)에 관한 서사도 다수 눈에 띄었습니다. 우리 시대를 약진하는 문제가 무언지, 응모자들은 사회의 어떤 지점에 주목하는지 작품을 통해 경향성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매끈하게 정제된 작품보다는 다소 울퉁불퉁한 지점이 있지만 K라는 주제를 잘 관통하며 시의성을 갖추고 자기만의 시선으로 세계의 안팎을 살피려 한 작품에 더 마음이 갔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숨은 글자들’은 심사위원 모두가 고르게 지지한 작품이었습니다. 이주민인 식부 케일라와 해녀인 시모 귀남의 시점을 유연히 오가는 이 작품은 국적도 언어도 다른 두 여성의 연대를 ‘한글 수업’이라는 소재로 섬세히 비춥니다. 읽는 내내 제주의 바람과 바다, 숨비소리가 뚜렷이 들리고 보이는 것도 좋았지만, 이 소설의 강점은 ㄱ이라는 ‘나’의 세계에서 ㄴ이라는 ‘우리’의 세계로 손을 맞잡고 넘어가는 인물의 낙관과 온기에서 비롯되는 것 같습니다. 쓸쓸하고 고단한 상황 속에서도 긍정과 삶의 의지를 잃지 않고 함께 나아가는 인물들의 마음이 미더워, 읽는 동안 ‘좋다’, 중얼댔던 기억도 납니다.
작가분께 당신의 다음 작품을 기다린다는 말씀을 꼭 보태고 싶습니다. 아울러 좋은 작품을 보내주신 수많은 응모자분께도 손을 내밀어 악수를 건네고 싶습니다.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책상에서, 카페에서, 식탁에서 고투하며 쓰고 있는 당신은 이미 작가라는 말을 덧붙이면서요.
성해나 소설가
미디어·드라마에서 주변화된 인물들 이야기 귀하게 다가와



은유 작가


‘기호수 K’는 인물 형상화가 돋보인 작품이다. 시간이 곧 돈이라는 자본의 원리를 철저히 체화한 속물적 인물인 편의점주 최윤호와 바코드찍기 외엔 어떤 일도 하지 않는 편을 택해 시스템을 삐걱거리게 하는 ‘바틀비적 인물’ 야간 알바생 기호수. 작가는 마치 키오스크처럼 ‘인지상정’이 조금도 통하지 않는 기호수라는 인물을 내세워 인간과 기계의 경계, 가장 약한 사람에게 가장 많이 부과되는 역할노동의 경계에 질문을 던진다. 또한 알코올중독 아버지를 둔 기초생활수급자 아동의 등장으로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 고된 노동의 장소이자 사회의 온갖 모순과 부조리가 흘러드는 곳으로서의 편의점이라는 공간에 깊이를 부여했기에 우수작으로 선정됐다.
보이지 않는 존재를 드러내고 ‘우리’로 감각하는 공동체의 범위를 확장해주는 게 소설의 역할이라는 점에서 ‘클럽 273의 드랙퀸 김동‘수’’도 좋은 평가를 받은 작품이다. 고독사의 흔적을 치우는 특수청소부와 드랙퀸이라는 취약하고 까다로운 정체성을 한 인물로 매끄럽게 접합해낸 점, 서로의 이름을 알아가고 불러주며 자아감을 형성해가는 성소수자의 사랑이 사이버폭력과 혐오라는 사회적 살인으로 파괴되는 과정까지 긴장감 있고 뒷심 있게 끌고 감으로써 짙은 여운을 남기고 묵직한 메시지를 던져줬다.
이 밖에 ‘유령 룸메이드’에서 빈 객실에 나란히 누워 서로의 일상을 나누는 아름다운 장면을 보여준 여성 호텔노동자, ‘그래서 난 좀 지겨워’에서 수능을 치르지 않고 배달노동에 나선 청소년노동자 등 미디어나 드라마에서 서사의 지분을 얻지 못하고 주변화돼온 인물의 이야기 하나하나가 귀하게 다가왔다. 다만 캐릭터가 겪는 고난과 불운이 ‘사건’이 되지 못하고 나열식으로 펼쳐지기만 할 때 이를 통해 전달하려는 주제의식이 모호해지고 진부해지는 아쉬움을 남겼다.
비록 수상작으로 선정되지는 못했지만 우리 시대 노동과 상처의 풍경을 세밀화로 드러내 보여준 글쓰기 동지들에게 뜨거운 감사와 연대의 마음을 전한다.
은유 작가